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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14일 서울지법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자동차에 오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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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유죄판결에 조선일보, 반성대신 “우린 피해자”
지난 29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로 기소된 방상훈(56) 조선일보 사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방 사장은 고법에서 △증여세 23억5천만원 포탈 △법인세 1억7천만원 포탈 △회삿돈 25억7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회사 주식 6만5000주를 명의수탁자를 거쳐 자신의 아들에게 명의를 이전해 아들이 실질주주로서 취급되고 있어 주식이 증여됐다고 판단하고, 또 피고인이 이를 허위의 주식양도·양수계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이 사건 증여를 실질적인 매매인 것처럼 조작해 증여세 23억여원을 포탈한 내용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옳다”고 밝혔다. 방 사장은 2001년 8월 증여세 55억원과 법인세 7억원을 포탈하고 회사공금 45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과 벌금 56억원을,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판결로 ‘탈세와 횡령죄’가 확정된 방상훈 사장과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번져가고 있다. 그가 대법 판결로 법에 따라 발행인 자격을 내놓았지만, 조선일보의 사장으로서 지위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6월30일 조선일보는 대법 판결에 따른 인사를 단행, 후임에 새 발행인·인쇄인 겸 대표이사 전무로 김문순(62) 상무를 선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상임대표 최민희·민언련)은 3일 ‘탈세사주, 조선일보에서 손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어 방상훈 사장의 경영권 완전 퇴진을 요구했다. 또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보도한 조선일보의 기사에 대해서도 기본적 ‘팩트’조차 없는 ‘기형적 기사’라고 비난했다.
민언련·기자협회 “조선일보 보도는 범죄 ‘물타기’” “경영 완전 퇴진하라”
민언련은 이날 성명서에서 “방씨의 유죄 판결로 2001년 세무조사에서 기소된 동아, 국민 등 언론사주들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게 됐다”며 “하지만 ‘1등신문’을 자처한 조선일보는 ‘최소한의 자성’도 보이지 않은 채, 사주의 범죄를 ‘물타기’하는 보도를 하는 등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서는 관련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사주가 어떤 혐의로 유죄를 받았는지에 대한 기본적 ‘팩트’조차 빠져 있으며,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한 언론에 대한 보복성 세무조사와 처벌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기형적 기사’”라고 분석했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조선일보가 탈세 부분에 대해서 최소한의 자성을 하리라 기대했었는데. ‘제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방사장이 공식적으로는 물러나겠지만 현재 조선일보의 분위기라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민언련의 성명서에 앞서 29일 기자협회(회장 정일용)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언론인 자격 잃었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방 사장의 경영 퇴진을 촉구했다. 기자협회는 “(방 사장이) 또다시 사주로서 신문사 경영을 계속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깨끗이 언론계를 떠나라. 그것이 조선일보를 비롯해 한국 언론계의 자존심이 회복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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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선일보 기사
대법, 본사 방상훈 사장 집행유예 확정 법인 조선일보·부사장에 대해선 원심파기
대법원 제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29일 언론사 세무조사 고발사건으로 기소된 조선일보사 방상훈사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25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3억원이 선고된 방계성부사장과 벌금 5억원이 선고된 법인 조선일보사에 대해서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항소심이 과세요건 및 조세포탈죄 부분에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최근 특가법의 상한 규정이 바뀌어 다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대북정책에 대한 주요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던 2001년 1월11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일부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받아 청와대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 필요성”을 역설한 직후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23개 언론사를 상대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 검찰 등 사정기관 직원 1000여명을 동원해 이뤄졌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정기 법인세 조사로는 극히 이례적인 100여명의 국세청 직원이 투입됐으며, 주요간부들의 금융계좌까지 조사했다. 그 해 2월8일부터 142일간의 국세청 세무조사, 2개월여의 검찰 수사를 거쳐 8월17일 조선일보·동아일보·국민일보 등 언론사 대주주 3명을 구속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 등을 비판한 주요 언론에 대한 정치 보복성 세무조사와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당시 조선일보사에 대해 국세청은 864억원의 추징세액, 공정거래위원회는 33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무리한 법적용을 자인, 상당액을 자진 철회하기도 했다.
이항수기자 hang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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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고문, ‘일말의 반성’도 없이 “조선일보에 대한 겁주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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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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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낸 김대중 고문은 “정치의 계절, 시련의 계절”이라는 7월3일자 기명칼럼에서 대법의 판결을 언급했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이 어느 사기업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는 현실에서 김 고문의 칼럼은 자사의 사주가 자행한 탈세와 횡령에 대한 한 마디의 반성도 없이, ‘피해’만을 역설했다.
김 고문은 칼럼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폭력적 겁주기가 시작됐다”며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이 비판신문에겐 ‘시련의 계절’”이라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조선일보는 5년 전 유례가 드물 정도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6·15선언 이후 북한 김정일의 답방을 놓고 비판적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에 40여명의 국세청 직원이 들이닥쳐 142일에 걸친 세무조사를 벌였습니다”라며 “잘못된 관행과 세법의 편의적 해석에 기대온 조선일보는 ‘탈세’의 철퇴를 맞았고 발행인이 석 달간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신문사의 간부와 주요 필진은 가족까지 계좌추적당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고 적었다.
사주의 탈세와 횡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신문사와 간부들이 세무조사를 통해 고통과 피해를 겪었다는 주장만을 펼친 것이다. 이는 대법 판결을 다룬 6월29일자 조선일보 기사가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의 횡령과 탈세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세무조사를 통해 처벌이 이뤄졌다는, 기사 작성의 ABC를 무시한 것과 같은 배경이다.
신문사나 방송사 등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제도적 장치로 여겨지고 심지어 ‘제4부’는 별칭까지 얻는 것은 그 사회적·공익적 위치 때문이다. 사주의 탈세와 횡령을 변호하는 언론이 다른 기업들이나 범죄자의 탈세나 횡령을 비판할 수는 없는 게 상식이다. 조선일보사가 주장한 대로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라 할지라도, 조선일보사의 항소와 상고를 통해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 판결을 받은 사실은 조선일보 사주의 탈세와 횡령에 대해 재론할 여지를 없앤 것이기도 하다.
대법 판결로 확정된 사주의 ‘탈세와 횡령’죄에 대해서 반성 대신 “정치적 목적의 비판기업 재갈물리기”라는 식의 논리를 사용하는 조선일보가 각종 사회적 현상에 대해 어떤 잣대를 동원할지도 관심이다.
정청래 의원 “언론 사장·발행인은 누구보다 도덕적·사회적 책임 커”
국회 문광위 소속인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도 방상훈 사장과 조선일보사에 대해 비판했다. 정 의원은 4일평화방송(P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언론의 성격을 공익성, 공영성, 독립성으로 본다”며 “당연히 이 성격에 맞지 않는 사람이 사주로 있거나 편집인·발행인이면 그런 역할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방 사장의 퇴진을 주장했다.
그는 “언론의 발행인·편집인·사장, 이런 분들은 어느 회사 사장보다도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신문사 사주가 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이용해서 사익을 취하거나 아니면 조세포탈 등 법률 위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자격을) 제한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상훈 사장, 4년 집행유예기간 동안 발행인 자격 잃었지만 ‘사장’은 그대로
방 사장은 정기간행물의 발행인과 편집인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집행유예 기간 중인 경우에는 발행인과 편집인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라 앞으로 4년 동안 발행인이나 편집인을 맡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사주로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조선일보 사장비서실은 “이번 확정판결로 인해 발행인만 그만 두신 것이며, 사장직은 계속 유지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주식 보유관계 등으로 볼 때 방 사장이 막후에서 계속 권력행사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일보의 기자는 “이번 인사 전에 회장에 취임할 것이란 소문이 많았다”며 “조만간 회장에 취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조선일보의 회장은 공석이며 방우영씨가 명예회장직을 맡고있다.
2001년 2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해당 언론사들은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결국 5년여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김병관 동아일보사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사 회장 등 언론사주들이 모두 유죄 확정판결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은 대법원에서 2005년 6월 10일 법인세와 증여세 등 43억 6000만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회사자금 18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서울고등법원은 2002년 12월 24일 25억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1백83억여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50억원, 사회봉사명령 240시간을 선고한 바 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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