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행정도시 합의안’ 때리기 행태, 속사정 따라 제각각 연기·공주 지역에 정부 12부4처2청을 옮기기로 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안에 대해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타협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의 위상이나 성격보다는 이전 규모와 대상 부처를 놓고 마지막까지 줄다리기를 한 끝에 재경부를 보내는 대신 여성부를 남기기로 하는 등, ‘12부4처2청’에는 실리와 명분이 맞교환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언론의 합창’은 타협의 산물이라는 지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조·중·동 사설의 논조도 제각각이다.
여야 합의를 가장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건 <중앙일보>다. 홍석현 전 회장의 주미대사 취임으로 노무현 정부와의 관계 재정립 가능성이 점쳐졌기에, 중앙일보의 강경한 보도 태도는 다소 뜻밖으로 다가온다. 중앙일보는 24일과 25일 잇달아 행정도시 건설안을 거세게 비난했다. 특히, 25일치 ‘한나라당은 야당 자격도 없다’는 사설은 공격의 포문이 정확히 한나라당을 겨냥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중앙, 공격 선봉…조·동은 어정쩡 사설의 첫 문장은 “한나라당은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이다. “열린우리당의 2중대인가”라며 질타하며 “이런 정당을 어떻게 공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존재 부인’을 하기도 한다. “12개 부는 옮기고 6개 부는 남는다고 해서 수도 이전이 아니라는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신문 사설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신랄한 표현까지 동원했다. 사설의 끝문장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다. 중앙일보는 사설 바로 오른쪽에 ‘수도분리도 위헌’이라는 제목의 유우익 서울대 교수 시론을 나란히 실어 비판의 강도를 극대화한다. 이 칼럼에도 ‘야합’, ‘흥정’, ‘술책’, ‘국정농단’, ‘어릿광대 놀음’ 등 자극적 표현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이에 앞서 24일치 사설 ‘행정도시, 정략적 타협으로 강행할 건가’는 “여야는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며 합의안 백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사설에 견줘보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은 다소 머쓱하기까지 하다. 조선일보는 24일치 사설은 제목(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부터 담담함을 잃지 않으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왜 12개부가 가고 6개부가 남는 것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거나 “사태가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새로 만들겠다는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성격과 기능부터 어정쩡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타협의 산물’이라는 표현이나 “이렇게 무계획적으로 굴러가도 되는 것인지 답답하다”, “참으로 무책임한 정권이고 정말로 기회주의적인 야당이다”라는 대목에서 불편한 심기가 드러날 뿐이다. <동아일보>의 25일치 사설 ‘경제부처가 경제중심 떠난다니’는 여야 합의안을 놓고 벌이는 점잖은 토론에 가까웠다. 사설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한국의 경제중심으로서 수도권의 위상이 흔들린다면 나라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일 클 수밖에 없다”는 등 시종 경제부처가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흔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표현도 등장하지 않는다. 겨우 “여야가 충청 지역의 표심을 ‘의식’해 어정쩡하게 이전대상 부처와 수를 ‘조정’했다”고 비판할 뿐이다. 조중동의 ‘타협론’과 여·야의 ‘타협’은 같은가 다른가? 조중동의 이런 태도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는 25일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쓴 칼럼에서 “위헌 판결 이후 충청권으로부터 구독 거부 등 핵폭풍을 맞은 조선과 동아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반면에 이번에는 중앙이 총대를 메고 반대선동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조중동 모두 행정도시 건설 및 이전에 반대하고 있으며, 다만 충청권 핵폭풍의 피해를 입지 않은 중앙이 서울과 수도권에 올인하며 조선·동아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을 뿐”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연초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약속하자 이를 두 손 들고 환영했고, 지난해 말 4대 개혁입법으로 극한 대치할 때는 앞장서 대화와 타협을 요구했던 이들 신문은 이번에 모처럼 여야가 ‘상생 정치’ 한 번 한 것을 두고 그동안 펼쳐왔던 자신들의 주장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독자들은 바로 그 점이 궁금하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중앙일보 25일자 사설] 한나라당은 야당 자격도 없다
연기.공주 지역에 정부의 12부4처2청을 옮기는 데 찬성키로 한 한나라당은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안을 내놓을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끝까지 반대할 투쟁의지도 없다. 2003년 12월 행정수도이전 특별법 처리에 동조했다가 이게 문제가 되자 "당시엔 17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사죄한 게 한나라당이었다. 그런데 이젠 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안에 찬성하겠다니 이런 정당을 어떻게 공당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표는 "내.외치 담당부서는 서울에 남기도록 했다"면서 "수도는 분명히 지켰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대법원, 일부 부처를 수도권에 남기는 것으로 야당 역할을 다했다고 할 참인가. 12개 부는 옮기고 6개 부는 남는다고 해서 수도이전이 아니라는 주장은 소가 웃을 얘기다. 박 대표가 말한 '무정쟁'이 이런 식이라면 정말 실망스럽다.
책임있는 야당, 집권 의지가 있는 정당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행정부처를 옮겨 땅값.집값을 올린다고 국토의 균형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 발상을 전환해 진정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균형발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고 국민과 충청도민을 설득해야 했다. 그게 국익을 우선시하는 보수의 진정한 모습에 부합한다.
이런 수준의 한나라당이라면 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비판할 자격도 없다. 포퓰리즘 정당의 추종정당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이전은 위헌이라고 헌재가 결정했다. 이 정부가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수도이전을 하는 데 야당이 거들어 주는 것이다. 헌재라는 제도를 깨는 데 야당도 참여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야당인가, 열린우리당 2중대인가.
벌써 여권에선 '단계적 수도이전'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수도가 둘로 쪼개지면 행정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 문제가 나올 게 뻔하고, 그러다 보면 서울에 남은 부처도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한나라당은 뭐라고 할 것인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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