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판신문 관계자들이 가판신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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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주요 가판 폐지 뒤 동아일보사 앞 가보니 분위기는 모두 예상을 뛰어넘었다.
가판업자들은 험악해져 있었고, ‘홍보맨’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지난 5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건물 1층과 그 옆 보도. 이른바 ‘가판’시장이다. 신문사들이 다음날치 신문을 전날 저녁에 미리 찍어 서울 시내 등에서 파는 초판 신문이 이곳에 모인다. 가판신문은 다시 각 언론사와 관공서, 기업 등으로 배달되기도 하고 직접 홍보담당자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3월7일)에 이어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까지 4월 들어 줄줄이 가판신문을 없애면서 가판시장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 기존에는 종합지 4천부, 경제지 2천부 등 약 6천부 정도가 모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그 숫자는 크게 줄었다. 신문을 분류하던 가판업자들에게 최근 상황을 물었다. 하지만,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우리 초상집인 것 더 잘 알잖아요? 여기 웃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하기 싫다고요. 아저씨, 기분이 좋아야 말하는 거잖아요?”
“웬만하면 우리가 얘기를 하지…. 스트레스 받으니까 묻지 말아요.”
“밥줄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말하기 싫다면 싫은 것이지.”
“옆에 동아일보 기자가 나와도 대답하기 싫은데….”
“사진 찍지 말아요. 카메라 깨지기 전에.”
“시비 붙어서 좋을 것 없잖아요? 저리 가세요, 좋은 말로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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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가판업자들이 나눠서 깔아놓은 신문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홍보맨’이었다. 5일은 식목일이라 공휴일. ‘혹시 홍보담당자들을 못 만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자의 걱정은 빗나갔다. 동아일보사 1층 복도는 빠르게, 그러면서도 꼼꼼히 신문을 뒤지는 이들도 붐볐다. 홍보맨들은 80명 남짓했다. 이들은 때로는 신문을 칼과 가위로 오리고, 더러는 어디론가 전화로 기사내용을 불렀다. “OO신문에 났는데요, 나쁘게 나오지는 않았고….”, “가판을 다 봤는데, 특별한 것 없습니다.”, “OO에 크게 나왔는데, 읽어 드릴게요.” 이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뉴스를 모니터하고, 스크랩한다. 각 기업 홍보실 직원뿐 아니라, 홍보대행사 직원들도 이곳에서 관련 뉴스를 체크한다.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40곳 이상 서비스를 한다. 가판 모니터는 한달에 600만원~1천만원의 홍보대행 서비스에 포함된다”며 “스크랩한 기사는 스캔을 뜬 뒤,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전했다. “제대로 우리 생각을 써주면 되는데, 홍보실과는 시각이 다르니까 가판을 보고 우리 ‘입장’을 얘기해주죠”, “직원들이 바쁜데 신문 다 볼 시간도 없고 비효율적이니까, 홍보실에서 스크랩해주는 것만 보라는 거죠”, “아침에 신문을 본 뒤 정정·반론보도를 할 수 있지만, 복잡한 절차를 겪어야 하잖아요”, “홍보가 CEO 관심사고, 나쁜 기사가 나가면 홍보실이 깨지니까”라는 게 이들이 가판시장을 찾는 이유다. 홍보담당자들은 “제일 바쁜 시간”이라고 했지만, 잇따른 가판 폐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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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이 없어지니까 대안이 없어 어떻게 할지…. 인터넷에도 늦게 뜨고, PDF 서비스도 늦으니까….” “가판이 안나오니까 당장 서비스를 끊어서, 수입이 줄어들었어요. 작업 시간도 10~20분 줄어서, 오후 7시15분쯤 되면 마쳐요.” “가판이 없어진 신문에 대한 대처방안도 세우고 있어요. 하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어요. 출입기자한테 좀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보도자료 잘 내서 오보를 막는 수밖에.” “없어지려면 전부 다 없어져야지 일부만 없어지니까. 안 나올 수도 없고….”
“저녁에 한번 모니터하면 되는데, 아침에 또 작업해야 되니까 이중 작업이라 더 힘들죠.” “주요 일간지 가판이 없어졌지만, ‘메이저’나 ‘마이너’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어디라도 안좋은 기사가 나오면 안되니까….” “고급 의뢰처는 전문지나 경제지에 관심이 더 많아요. 특히, 정보통신쪽 기업은 종합지보다 크게 다루니까.”
△ 한 홍보관계자가 가판신문을 본 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다. 김순배 기자 |
홍보담당자들은 가판 폐지가 대세라는 점은 받아들이면서도, 그에 따른 불편도 지적했다. 한 홍보담당자는 “전반적인 미디어 상황에서 가판 폐지는 바람직하지만, 장단점이 분명히 있어요. 업체 이름, 임원 이름을 틀린 것도 다반사거든요. 가판이 모두 없어지면 고치는 게 불가능해지잖아요?”라고 말했다.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가판 나온 뒤에 반응보고 고칠 수 없으니까, 기자들이 한번 더 확인하고 쓰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가판업자와 ‘홍보맨’들은 울상을 짓기도 했지만, 언론계에서 가판은 꾸준히 사라질 대상으로 지적돼 왔다. 저녁 가판신문은 지방 현지 인쇄시설이 없을 때 전날 저녁에 찍어서 지방으로 배달되던 신문이 서울시내로 흘러나오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1980년대엔 광화문 동아일보사 가판시장이 가장 먼저 내일의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뉴스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가판신문은 ‘밤의 대통령’을 낳았다. 정부 기관과 각 기업들이 가판신문을 보고 밤마다 언론사를 찾아가 ‘로비’를 통해 불리한 기사를 빼는 과정에서 신문사들이 누린 권력 때문에 생겨난 부끄러운 이름이다. 아침에 기사가 빠질 때마다 정부와의 거래설, ‘광고와 기사를 바꿔먹기 했다’는 의혹도 수없이 지적됐다.
△ 가판업자들은 동아일보사 건물 1층의 바깥에서 가판신문을 모으고 배달하고, 홍보실 직원과 홍보대행사 직원은 건물 안에서 가판신문을 살펴본다. 김순배 기자 |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뒤 ‘공무원들이 가판신문을 본 뒤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했고, 관공서들의 가판구독 중단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설 등에서 “가판 구독을 금지한다는 발상도 언론의 속보성과 정보성을 무시한 일방적 제동장치에 불과할 뿐”이라거나, “청와대와 국정홍보처가 일부 기업에 대해 가판신문 구독조사를 한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등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5일 만난 한 가판업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차례로 가판을 없앤 것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는“여기 젊은 사람들은 노무현 많이 찍었는데, 자기 밥줄 끊어지는 줄 몰랐지”라고 말했다. 또 가판신문은 각 언론사들이 가판신문을 받아본 뒤 서로 보고 ‘베끼는’ 노릇을 해왔다. 경쟁신문의 보도를 서로 베끼면서 “제호만 가리면 어느 신문인지 밤사이 알 수 없게 똑같아진다”는 비아냥거림도 이때문이다. 기자들은 저녁 7시30분께 회사에서 전화를 받으면 다른 신문에 난 기사를 확인하고 뒤늦게 기사를 베껴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문제점 못잖게 최근의 가판폐지는 현지인쇄, 무가지 배포, 인터넷의 발달, 경영난 가중 등과도 맞물려 있다. 관행처럼 제작해 왔지만, 별도판 제작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또 <조선일보> 등이 앞서 가판신문을 없애는 상황에서, ‘지면전략노출’의 부담도 작용했다. 이때문에 가판폐지는 몇년 전부터 꾸준히 검토됐지만, 제주 현지인쇄가 어려운 작은 신문사 등이 대안이 없어 폐지를 미뤄왔다. 1년에 약 7억~10억원 가까운 현지인쇄에 따른 적자 부담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저녁 8시40분 비행기로 제주도로 신문을 실어 보내고 있다. <세계일보>가 항공사와 연계해 신문전용 화물기 운항을 검토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은 미지수로 남아있다.
△ 가판신문은 신문이 세로쓰기를 하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8년 당시 가판시장의 모습. <한겨레 21>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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