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4.07 18:15 수정 : 2005.04.07 18:15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보도에서 가판신문 관계자들이 신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요 가판 폐지 뒤 동아일보사 앞 가보니

6천부서 4천부로 줄어 판매없자들 ‘울상’
기업 홍보팀 “미리 정확히 알릴 수밖에”

“사진 찍지 말아요, 카메라 깨버리기 전에.”

지난 5일 오후 5시30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건물 앞 보도. 이른바 ‘가판’ 시장의 업자들은 험악해져 있었다. 다음날치 신문을 전날 저녁에 미리 찍어 언론사와 기업체, 지하철 판매대 등에 뿌려지는 가판신문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7일치 <조선일보>부터 시작된 가판 폐지 행렬은 4월 들어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가판업자들은 말을 붙이기도 무서웠다. 한 가판업자는 “초상집인 것 더 잘 알잖아요. 여기 웃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며 “스트레스 받으니까 묻지 말아요”라고 손을 저었다. 다른 가판업자도 “밥줄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말하기 싫다면 싫은 거지”라며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기자가 “대학 때 신문 배달을 해봤다”고 소개하며 통사정을 한 뒤에야 한 가판업자는 말문을 열었다. 그는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를 같이 보는 곳이 많은데, 알짜신문이 다 나가니까 판매가 크게 줄었다”며 “서울 외곽은 수지가 안 맞아서 배달을 못 해주고, 가까운 관공서 같은 데는 ‘가판이 필요 없다’는 데도 봐달라고 붙잡고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다른 업자는 “가판으로 먹고 살던 사람이 60명 정도였는데 최근 20명 정도로 줄었다”며 “(가판을 보면) 미리 점검해서 대비할 수 있고 좋은데…”라며 불만스러워했다. 4개 주요 신문들의 잇단 가판 폐지로 인해 종합지 4천부, 경제지 2천부 등 약 6천부에 이르렀던 동아일보 앞 가판 시장은 현재 30% 이상 줄어든 4천부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판 시장에서 기사를 꼼꼼히 살피던 홍보 관계자들은 달라질 홍보 여건에 고민스러워했다. 한 홍보 관계자는 “미디어 상황에서 가판 폐지는 바람직하지만, 잘못된 것을 밤 사이에 바로잡을 수가 없잖아요”라고 문제점을 되물었다. 다른 홍보 관계자는 “가판이 없어진 신문에 대한 특별한 대응책이 없다”며 “출입기자한테 좀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판업자와 홍보 관계자에게 고민이 되겠지만, 정부기관과 기업의 ‘기사 삭제 및 축소 로비’나 언론사간 기사 ‘베끼기’의 원인이 된 가판은 2001년 10월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무현 정부의 ‘가판구독 중단’ 선언뿐 아니라, 지방 현지 인쇄, 무가지 배포, 인터넷의 발달과 경영악화에 따른 제작료 부담, 지면전략 노출부담 등으로 효용성이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가 가판을 폐지했다고 가판시장이 곧바로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날도 주요 일간지들이 빠졌지만 여전히 가판시장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주요 경제지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등 일간지의 가판신문이 배달됐다. 휴일인데도 이곳을 찾은 홍보 관계자는 80명에 이르렀다. <세계일보>가 가판폐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주요 경제지인 <매일경제>는 가판을 없애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한 홍보 관계자는 “기업은 작은 신문에 의해서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경제지나 전문지는 사안을 더 크게 다루기 때문에 가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유진 민언련 정책실장은 “과거와 달리 가판신문을 통해 정부나 기업체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가판이 없어지는 것 같다”며 “신문사간의 베끼기와 따라가기로 지면의 획일화를 낳았던 가판의 폐지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주동황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가판의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람타기’식으로 가판을 없애는 것도 신문 시장의 획일적 구조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30년째 신문을 판다”는 한 노인은 “잘 나갈 때는 하루에 600부도 팔았는데 이제는 망하게 생겼다”며 “가판과 함께 내 청춘을 보냈다”고 말했다. 가판시장의 화려했던 ‘청춘’도 바야흐로 저물고 있다.

글·사진 김순배 기자기자marcos@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