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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14:42 수정 : 2005.05.11 14:42

파리 외곽 70km 부근에 있는 한 양계장 사료 제조실에서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암살 사건을 재연하고 있는 김형욱 암살조장 이씨(맨 오른쪽). (<시사저널> 제공)


<피디수첩> 파리 ‘현장검증’에 <시사저널> ‘짜맞추기식’ 반박

“취재는 부실했고 결론은 성급했다”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가 지난 7일 MBC <피디수첩>이 방송한 ‘김형욱 양계장 암살’ 현장검증 프로그램을 보고 내놓은 비판이다. 지난달 11일 이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정 기자는 <피디수첩> 제작진과 함께 얼마 전 일본과 프랑스 현지를 다녀온 터였다. 취재가 충분히 되지 않았는데도 제작진이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는 게 정 기자의 주장이다. 한 마디로, “제작진이 서울에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현지에선 ‘그림’ 찍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9일 즉각 반론을 내놓았다. 정 기자의 보도는 “상식을 외면하고 검증은 생략한 보도”였다는 게 문화방송의 반박이다. 제작진은 △사람을 흔적없이 만들 양계장 분쇄기는 과거는 물론 지금도 없다는 점 △김형욱의 암살자라고 주장하는 이아무개씨가 범행동 선을 설득력있게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양계장 암살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제작진은 이번 취재과정에 대해 제 3의 언론에 검증을 받거나, <시사저널> 관계자들과 토론을 할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현장검증 아닌 결론 내린 뒤 짜맞추기식 취재”

%%990002%%정 기자는 <피디수첩>이 자신과 함께, “26년이나 지났는데 파리에 가서 성과가 있겠냐”며 머뭇거리는 이씨를 “당연한 일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제작진이 다른 프로듀서를 먼저 파리에 보내 1979년부터 파리 근교 양계장의 실태와 위치를 파악해 이씨가 도착하면 데리고 다니며 기억을 짜내보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는 것이다. 정 기자는 “제작진은 현지 브제이(VJ)를 시켜 파리 근교 양계장 한 두군데와 분쇄기 모습을 찍도록 시킨 게 다였고 애초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현지 코디네이터를 다그쳐 1979년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양계장 7곳의 지명을 확보했으나 취재일정상 확인취재를 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사료공장에서 살해 장면을 연출하려는 제작진을 설득해 양계장 한곳을 찾았으나 강력한 분쇄기를 사용하는 ‘산란계 양계장’이 아니었다”며 “이씨가 김형욱의 살해에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분쇄기는 ‘커터 절단기’인데 제작진이 찾아간 곳의 분쇄기는 곡물을 가는 ‘롤러밀’ 형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욱이 이씨가 파리에 오기 전부터 26년이 흘렀기 때문에 현장 검증이 쉽지 않을 거라 했고 제작진이 이를 안심시켰으면서도 이씨가 납치현장을 쉽게 찾지 못하자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몰아붙였다”며 “이번처럼 부실하게 취재하고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제작진은 이씨와 동행해 철저히 현장 검증을 했다고 밝혔지만 국내외에서 몇몇 축산연구가나 업자들의 말만 듣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 역시 현장까지 갔지만 의문만 잔뜩 안고 돌아온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암살 현장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여배우 최지희씨와 암살조장 이씨의 출입국 기록 등 확인해야 할 핵심사실을 밝혀내지도 못했으면서 제작진이 이씨의 양계장 살해 주장이 거짓으로 확인됐다고 성급히 발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양계장 살인 확인해줄 공개토론 시사저널에 제안”

<피디수첩>의 주장은 이와 달랐다. 제작진은 “이번 취재 결과 해당 기자(정희상)가 제기한 김형욱 양계장 암살설의 근거들이 거의 다 부정됐다”며 “남은 것은 암살자를 자처하는 이아무개씨의 주장과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취재기자의 확신 정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제작진은 “망치로 곡물을 부수는 ‘해머밀’의 경우 망치가 투입구에 들어온 물체를 분쇄하지만 아래부분에 체가 있어 수분이 20~30%이상 감지되면 기계가 멈춰버린다. 시사저널이 얘기하는 ‘커터 절단기’는 양계장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설명이다”라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파리 근교농업협회 관계자와 양계장 운영자 등의 말을 빌어, “79년 당시 프랑스 양계장에는 소형 분쇄기가 대부분이었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형분쇄기도 이물질이 들어가면 작동을 멈춘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정 기자가 지난달 17일 기사에서 ‘양계장 분쇄기를 이용한 암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국내외 양계업자들의 설명이다”’라고 쓰면서도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7일자에서 농촌진흥청 축산기계 연구실 관계자의 말을 빌어 ‘회전식 해머밀도 30마력 정도의 고속으로 돌아가는 큰 것일 경우 동물 시체를 부술 수 있다’라고 썼지만 당사자한테 확인해보니 정 기자가 발언내용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제작진은 암살조였던 이씨 주장의 신빙성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이씨가 범행 전까지 이틀을 묵었다는 프랑스의 숙소와 일본에서 범행지령을 받기 위해 접선을 했던 노천카페조차 찾지 못하고, 국내에서의 인터뷰와 현지에서의 인터뷰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시사저널>에 공개적으로 몇가지 제안을 했다. <시사저널>이 다음 호에서 양계장 암살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전문가를 실명으로 인터뷰해 줄 것과, 이씨를 설득해 다른 암살자나 안내인 등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를 밝힐 것, 이번 취재에 대해 제3의 언론에 검증을 받거나 <시사저널>과 <피디수첩> 관계자 사이의 토론을 벌이는 것 등이다.

끝으로 제작진은 “거의 모든 매체들이 인용하도록 한 끔찍한 보도가 충분한 검증이 없는 오보였음에도 그냥 지나간다면 국민들이 겪은 심리적 충격과 언론윤리의 저하는 어떻게 보상받을 것이냐”며 “이번 양계장 암살설이 가져온 충격의 파장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결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영인 기자 soph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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