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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2 19:33 수정 : 2005.05.12 19:33

“지금 한겨레를 보는 문제적 시선은 두 종류다. 하나는 한겨레가 변해서 문제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너무 안 변해 문제라는 것이다.” 한겨레 창간 사원인 이인우 기자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온갖 쓴 소리들을 지난 8일치 칼럼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그의 말은 〈인터넷한겨레〉의 한 가상 토론회에서도 소개되었다. 토론회 사회자는 한겨레에 대한 바깥의 주문들이 “‘변화’냐 ‘초심’이냐를 놓고 조금 혼란스러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종류의 시선을 대하면서 기자들이 혼란을 느낀다면, 그것은 ‘변화’와 ‘초심’이라는 두 방향 중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인 탓이다. 변화와 초심은 선택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방향이다. 중요한 것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을 정하는 일이다.

한겨레가 지켜야 할 초심은 무엇인가? 도덕성과 독립성이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언론계의 고질적인 관행이었던 촌지 거부를 선언했다. 독립이라고 말할 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고, 기자와 편집자의 무식과 게으름에서부터 언론 및 기자가 누리는 ‘권력’에 안주하는 타성, 신문사 내부의 비민주적이고, 반지성적인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지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앞에서 인용한 이 기자의 칼럼은 한겨레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은 특정 정파나 정권을 싸고 돌고, 광고 협찬 잘 주는 대기업 눈치나 보고 있으며, 한겨레다운 매운 맛도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나 매운 맛이 나는 지면은 창간 이후 한동안 독자들에게 비쳤던 한겨레 지면의 특징이었을 뿐, 신문의 독립성을 구성하는 본질은 아니다. 큰 광고주에 대한 태도는 독립적인 신문의 풀기 어려운 딜레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정도를 넘어 신문의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었는가 하는 판단의 문제일 것이다. 한겨레가 초심을 지킨다고 할 때, 창간 당시의 모든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독립성을 고수한다는 뜻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겨레가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총론적 접근이 아닌가 싶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편집의 원칙으로서 ‘민족, 민주, 민생’을 주창했다. 창간 당시는 반민족, 반민생, 반민주적 보도들이 난무하던 때라 한겨레의 편집 원칙이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는 컸다. 예를 들면,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리면 신문들이 으레 “북한이 생떼를 썼다”고 보도했으나, 한겨레는 “북한이 주장했다”라고 보도했다. 그것만으로도 한겨레의 차별성은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제 남북한 관계와 북한 핵문제, 경제 사회적 민주화 문제, 그리고 노동 문제를 비롯한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총론적 구호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고차 방정식이 되어버렸다.

한겨레는 총론적인 접근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를테면, 한겨레가 다른 언론과의 차별성이라고 자부하는 ‘개혁에 대한 지지’도 총론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갖춰야 한다. 정책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일일이 한겨레의 시각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문은 필수품이라기보다 기호품이라고 분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뉴스에 대한 일차적인 갈증은 인터넷에서 해소한다. 그런 사람들이 굳이 신문을 보는 이유는 신문에서 ‘판단’의 틀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런 독자들을 붙들기 위해서는 문제를 보는 시각이 새롭거나, 심층 분석했거나, 남들이 놓친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등 남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창간 17돌을 맞아 ‘제2창간’을 준비하는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격려를 보내며,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는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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