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9 17:46
수정 : 2005.05.19 17:46
1988년 5월15일, 백두산 천지가 큼지막하게 수놓아진 한겨레신문, 기사 내용보다도 창간호가 내 손에 들려있다는 것 하나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암울했던 시대, 접었던 희망의 씨앗을 다시 품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서재에 보관돼 있는 그 빛바랜 36면짜리 창간호는 신문이 아니라 감동 그 자체다.
‘국민을 대변하는 참된 신문’이 되겠다는 창간사로 출발한 한겨레신문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 몸집 불리기에 혈안이 된 당시 언론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인가, 등록증 교부에만 석 달이 걸릴 만큼 정권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참언론’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초대 편집이사였던 권근술 논설위원의 표현대로 “국민의 성원”이였다. 이러한 국민의 성원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50억원이라는 기금을 100일 만에 마련하였다. 이것은 새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의 표현이었지만 2만7천52명의 국민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적이었다. 이러한 국민의 성원으로 권력과 자본의 유혹 대신 약자와 정의,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을 택하는 한겨레 정신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시대가 변해 제2의 창간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한겨레신문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다급해진 현실이 신문시장의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초심과 미래에 대한 전략을 아우르는 뼈아픈 성찰 역시 한겨레답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한겨레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17년의 세월의 궤적이 너무나 굵고 선명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의 야만성에 맞서 싸워왔던 고난의 세월이 참으로 장하기 때문이다. 이 가치와 업적은 모든 국민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한겨레의 존재와 관계없이 사회를 진전시키는 동력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상황과 격은 다르지만 그 한겨레의 가치를 실현하는 움직임이 수도권 일원에서 일고 있다. 바로 경인지역 새 방송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해 경인방송(iTV)의 재허가 추천 거부로 인해 12월 31일 정파된 경인지역의 새 방송 설립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은 경기·인천지역과 전국단위의 350여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인천지역에서 이름을 걸고 활동한다고 하는 단체는 거의 망라된 셈이다. 이 점에서 이미 경인지역이라는 지역 의제를 이미 벗어난 셈이다. 그간 월등한 매체 영향력으로 권력화되기 쉬운 TV방송사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시민·사회단체들의 욕구가 건강한 방송 현업인들과 결합되면서 분출된 셈이다. 이제는 시청자가 참여하는 방송, 시청자가 주인 되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시민·사회단체의 “대안을 내는 창조적인 참여”인 셈이다. 사실, 1990년대 서울방송(SBS) 허가 이후 한국의 방송 시장은 지상파 방송의 전반적인 상업화가 강화되었고, 자본 중심의 상업적 미디어가 속속 들어서는 국면이다. 민영화와 상업화라는 표현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시청자를 양산한다. 지난 3월 24일 결성된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는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저한 공익성과 지역성을 담보하는 시청자 참여형 새 방송을 350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서 만들겠다는 열의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점점 열악해지는 지역방송사들의 여건과 연계, 정파된 경인방송의 재판을 우려하기도 한다. 행정개편과 관련 경인지역이라는 지역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경영의 안정성을 미끼로 제2수도권 민방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350여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동기와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새 방송 설립과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용자들의 의지”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 수용자들의 의지가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 기적을 일으키는 역사를 17년 전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주현/ 경기 민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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