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 지난 1일 열린 월례조회에서 제작비와 임금삭감, 명예퇴직 등 경영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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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폭 적자예상…명퇴·임금 삭감등 대응책 내놔
일시 부진 아닌 뉴미디어 성장 따른 구조적 문제
“콘텐츠 제작 인력 중심으로 혁신” 목소리 높아 지상파 방송사들이 허리띠를 조여매고 있다. 경비절감책은 공통사항이고, 일부에선 ‘명예퇴직’과 임금삭감의 칼까지 빼들었다. 예상을 웃돈 1~3월 광고 매출 감소로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는 게 직접적 이유다. 근본적으로는 지상파 방송 자체가 구조적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파 독과점 아래 황금기를 구가해온 지상파 방송사들에도 위기의 시간이 시작된 것일까? 가장 급박한 곳은 한국방송이다. 지난해 638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예상 적자치는 745억원에 이른다. 올 1~4월 광고 매출액은 예산 대비 244억원이 감소했다. 정연주 사장은 마침내 지난 1일 제작비 13.7% 삭감과 임금 삭감, 명예퇴직, 3년 연속 근무평가 불량자 직권면직 등을 포함한 경영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임금 삭감 폭은 제작비 삭감 폭보다 높은 수준에서 노조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혀, 14~15% 선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 쪽은 임금 1% 삭감 때 46억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방송도 올 한해 300억원 가량의 적자가 날 것으로 보고 비상대응에 나섰다. 지난 3일엔 임금 6% 삭감에 노사 합의를 이뤘다. 임금 삭감의 비용절감 효과는 62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 밖에도 소모성 경비 절감을 통해 102억원의 지출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사정이 약간 낫다는 에스비에스도 큰 폭의 매출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올 4월까지 광고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9억원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5월1일부터 복리후생비와 접대비 등을 팀별로 10~20%씩 삭감했다”며 “60억원 가량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방송도 7월부터 10% 비용 삭감 운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노조 쪽의 대응은 회사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문화방송 노조가 임금 삭감에 합의해준 반면, 한국방송 노조는 “경영진이 먼저 자진 임금 삭감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걸 전제로 직원 임금 삭감 등 고통 분담을 요구해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스비에스 노조는 “이미 인력이 슬림화해 인건비 비중이 20%가 채 안된다”며 “임금을 깎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교육방송 노조도 “지난 4월께 퇴직금 중간정산에 합의하는 등 이미 노조가 많이 양보한 상황이라 회사가 임금 삭감까지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지상파 방송의 위기감을 더욱 깊게 하는 건 최근의 경영부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정연주 사장은 “케이비에스의 경영위기는 경기침체로 인한 일시적이고 순환적인 문제가 아니라 매체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며 “광고시장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지상파의 광고수입은 줄어들고 케이블과 위성 등 뉴미디어 매체의 수입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 1.5%에 그쳤던 케이블 등 비지상파 방송의 시청점유율은 2004년 28.8%로 치솟았다. 반면, 지상파 시청점유율은 같은 기간 91.6%에서 71.2%로 감소했다. 디엠비(이동멀티미디어방송)와 아이피티브이 등 뉴미디어의 잇단 등장으로 지상파의 독점체제 붕괴는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지상파 방송사에 단기적 대응 아닌 구조적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광고단가 인상과 중간광고 허용을 부쩍 강조하는 걸 두고는 시청 비용을 높여 손쉽게 문제를 풀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독과점 아래 유지돼온 고비용 저효율 인력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콘텐츠 제작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퇴출구조의 제도화가 불가피하다”며 “사람을 막 자르라는 게 아니라, 콘텐츠 제작 인력 중심으로 구조를 바꾸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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