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6 16:35
수정 : 2005.06.16 16:35
언론의 자유,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성역이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간 언론은 제4부라는 지위를 얻어가며 합법적인 정권에 대하여 쿠데타를 부추기는 광고를 실을 만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간간이 엄살을 피우며 언론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훼손된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며 스스로 권력화되어 그 사명을 잃은 대가이다.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의 자유인가? 언론의 자유가 탈세의 자유인가?”라는 표현은 자본과 권력으로 기반을 다진 언론에 대한 질타인 동시에, 그간 언론 수용자들의 자유가 얼마나 유린되어왔는가를 잘 나타내 주는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언론의 자유보다 독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언론의 자유가 양과 질에 있어 발전해온 만큼 수용자들의 주권도 담보되어왔는가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특히 신문에 있어서는 더하다. 적어도 신문에 관한 한 자본 앞에 그 권리는 무참하게 짓밟혀왔다. 보기에도 솔깃한 경품들을 들고 다가오는 집요한 상술에 넘어가는 독자들을 어찌 나무랄 수 있는가. 끊을 때는 또 어떤가. 인간적으로 사정을 하다 안 되면 협박까지 해대는 재벌신문들의 앵벌이식 독자 확보전쟁 속에서 오죽하면 ‘신문 끊기가 담배 끊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겠는가.
〈미디어 오늘〉이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결과를 보면 그 같은 상황들이 단순한 추정이나 우발적인 일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보던 신문을 바꾸게 된 동기가 ‘경품이나 할인 때문’이라는 답변이 36%로 가장 많이 나왔고 조중동 독자들의 76%가 그 혜택을 받았다고 답변을 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독자가 전국지의 70%를 웃돈다.
서로 비슷한 논조의 신문이 설정한 의제가 전체의 여론인 양 호도되는 대한민국의 언론지형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자본의 힘을 통해 선택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주권은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본질을 담보한 ‘진실 보도’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2005년도 새해 벽두, 국회에서 조선일보로부터 “개탄스런 한나라당의 처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통과된 신문법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운명이 맡겨졌다. 양심적인 현업인들과 언론수용자 단체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소유지분에 대한 규정과 편집권 독립이 삭제된 누더기 법안이었지만 이 법안 통과에 대한 재벌신문들의 반발은 대단했고 급기야 7월28일 신문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피해구제법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 청구서를 냈다. “국가가 언론 활동을 규제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신고포상제 실시에 따른 실제적인 무가지 감소와 신문유통원 설립에 따른 위기의식의 표출인 셈이다.
신문법과 언론피해구제법에 대한 시민단체의 일반적인 시각은 여론독점에 따른 폐해의 최소화와 신문시장의 정상화이다. 점점 위축되어 가는 신문시장을 되살리려는 지식사회 위기에 대한 절박함도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아 언론 수용자의 주권을 세우고자 하는 순진한 기대와 소박한 바람이 있다. 독점적 지위에 길들여진 오만한 재벌신문들은 그러한 신문시장의 재편이 싫은 거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신문법은 진흥법이 아닌 규제법이 되는 거 아닌가.
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