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7.28 19:24 수정 : 2005.07.28 19:26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우여곡절 끝에 엠비시가 ‘엑스 파일’을 보도했다. 불만이 한두 가지 아니다. <조선일보>에 떠밀려, 함량 미달의 기사들로 시작한 첫날 9시 뉴스에 대해 사내 기자들조차 불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용기 있게 후속보도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 도청정보 외에 스스로 취재 발굴한 시사를 내놓지 못하는 점은 엠비시의 심각한 약점으로 남는다. 엠비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자기 성찰, 자사 비판의 움직임을 보인 내부 구성원들이 앞으로 사건과 관련해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렇지만 <중앙일보>와 비교해 보면, 그래도 훨씬 나은 편이다. 2001년 <중앙일보>는 “미국 법원, 불법도청도 공익 위한 보도라면 처벌 못해”라는 기사를 실었다. “공공적인 관심사이고 언론사가 합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라면…제3자가 불법적으로 얻은 것일지라도…보도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도 처벌할 수도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그 내용이다. 언론 자유와 보호를 규정한 헌법이 도청금지법에 우선한다는 중요한 판례다. 여론의 왜곡은 이렇게 자신이 소개한 정보조차 임의로 뭉개 버리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모두가 진상 규명과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앙일보>가 내지른 것은 “불법도청 내용 방송 말라” “불법도청 정보를 보도하면 불법이어서 처벌해야 한다”는 엉뚱한 소리였다. “엑스파일, 도청의 진상규명이 먼저”라는 오리발 사설이다. “나도 당한 사람”이라며 노대통령을 호명하고, “불법자료…무슨 근거로 수사”하냐며 검찰을 부추기며, “엠비시 엑스파일 보도 법적 대응”하겠다는 삼성 측 주장을 강변한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는 그럴듯한 사과문을 내놓는다. “정파적 이해에 끼어들었던 잘못”을 이미 반성했는데도, “지금의 <중앙일보>의 모습”을 “폄하”하는 “일부의 움직임”을 비난한다. 음해세력에 맞서 싸울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그렇듯 “불편부당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고유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결과가 고작 위에서 본 기사와 사설인가? “도청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는 협박문인가? “불법 도청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옳다”고 띄우고, “사건 본질은 불법도청”이라는 ‘검찰 핵심 관계자’의 말을 옮기는 협작인가? “반성한다더니…장난하냐!”는 비난, “물귀신식 반성”이라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중앙일보>는 시대 청산의 주체가 못 된다. 부패한 재벌과 불륜 관계에 있는 결정적 모순의 일부로서, 비판과 청산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런 <중앙일보>에 대해 공정한 언론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고, 자기반성하라 촉구하며, 정언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지금은 그게 할 일이 아니다. ‘엑스파일’을 통해 재확인한 게 있다면, 권력의 주 특기인 반성문은 아무 쓸 데가 없고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이다. 위기 때마다 머리 조아려 사죄하는 모습에 속아 성급히 사태를 봉합하는 오류는 안 된다.

재벌신문 <중앙일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약삭빠른 사과의 기회가 아닌, 책임 있는 양심과 실천을 위한 비판의 시간이다. 그래야 <중앙일보>가 살고. 한국 언론이 살며. 우리 사회가 산다. <중앙일보>와 삼성에게 서투른 제언은 금물이다. 물론 삼성도 반성문을 썼다. ‘인권’을 말하고, ‘민주’를 들먹였다. 그렇지만 그 오만한 사과문이 말하는, “올바르고 투명한 경영” 약속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엠비시와 마찬가지로, <중앙일보>와 삼성은 오직 행동으로 말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냉정히 자본권력과 매체권력을 감시하는 게,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할 시민사회의 합당한 행동 강령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unacom@knua.ac.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