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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9 17:13 수정 : 2005.07.29 17:28

올 5월 청주 한겨레가족모임은 8명의 정신박약 어린이들을 초청해 경남 남해와 거제도로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청주 한겨레가족모임은 지역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사진 청주 한겨레가족모임 제공

한겨레 제2창간

■ 청주 한겨레 가족모임

<한겨레>를 인연으로 주주와 독자들이 지역별로 정기적으로 모이는 한겨레 가족모임은 전국에 10여곳이 있다. 활동이 활발한 예닐곱 가족모임 중에서도 청주모임은 유서 깊고 끈끈함이 남다르다.

청주 한겨레 가족모임은 1992년 서울에서 열린 한겨레 주주총회를 다녀온 이 지역 주주들이 한겨레 창간기념일인 5월15일 모임을 꾸리면서 시작되었다. 햇수로 14년째를 맞는 동안 청주 한겨레 가족모임은 청주지역 시민사회운동 세력의 못자리 노릇을 했다. 88년 <한겨레> 창간 이후 청주지역에서 한겨레 독자모임은 민주화와 민족 화해를 염원하고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사랑방이었다. 민주화가 진전하고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초창기 한겨레 가족모임에서 함께 논의하고 활동하던 사람들이 특화된 시민사회운동 분야로 진출했다. 한겨레 가족모임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이 배출됐는가 하면 지역의 문화운동과 언론 수용자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들도 여럿 나왔다. 현재 청주 가족모임 회원은 50여명,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20~30여명이 얼굴을 맞대는 모임을 연다. 월 2만원씩인 회비를 모아, 한겨레 가족모임의 이름으로 다양한 행사를 치른다.

한달에 한번씩 정기모임…소식지 제작·봉사도 함께
같은 신문 본다는 이유로…한겨레는 참 희안하죠?

청주 가족모임은 단순한 친목모임을 넘어선다. 매월 1회 4쪽 혹은 8쪽씩 만들어내는 소식지는 청주 한겨레 가족모임의 구심점이자, 공식 기록물이다. 한겨레신문사에서도 발간되다가 몇 차례 중단된 바 있는 주주 중심의 소식지가 청주지역 주주·독자들의 자체적 노력으로 빠짐 없이 매월 1회씩 만들어져 배달되고 있다. 소식지는 94년 처음 만들어져 부정기적으로 나오다가, 5년 전부터 월1회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월요일 아침 <한겨레> 청주지역 배달판과 함께 배달된다. 4800여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종이값만도 15만원, 가족모임이 별도로 회비를 모아 제작비용을 충당한다. 이러다 보니 청주지역에서 한겨레 배달사고가 나면 “왜 오늘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느냐”는 한겨레신문사나 지국으로 갈 전화가 가족모임으로 걸려오기도 한다.

청주 모임은 올해 사천동 성당 뒤의 땅 700여평에 한겨레 가족농장을 마련해, 회원들이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감자·오이·고추·토마토를 길러 처음 수확한 것을 한겨레 한마당 행사에 냈다. 공군사관학교 김용욱 교수는 ‘여락당’이란 우리 문화 사랑방을 만들어 국궁과 다도를 비롯해 가야금·대금·거문고를 가족모임 회원과 일반인들을 상대로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청주 한겨레 가족모임은 고유한 ‘원칙’을 두고 있다. 회비를 모아 뭉칫돈을 만드는 대신 해가 가기 전에 “다 써버린다”는 것과 “좋은 일에 쓴다”는 것이다. 가족모임이 몇 해 전 개최한 어린이날 모임은 이제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어린이날 행사가 되었다. 중앙공원에서 1000여 노인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시설에 있는 정신박약 어린이 8명을 가족모임 소속 열두 가족이 한 사람씩 맡아 경남 남해와 거제도 일원을 관광하기도 했다. 지역내 각종 봉사활동과 관련한 비용은 협찬 없이 모두 회원들의 추렴으로 마련했다.

두손기획이라는 디자인·인쇄기획사를 운영하는 가족모임의 김인규씨는 “나는 그동안 여러 단체와 모임에서 활동하다가 이제 한겨레 가족모임과 동창회만 나간다”며 “한겨레 가족모임이 제일 편하고 좋다”고 자랑한다.


“한겨레 가족모임은 부담을 안 준다. 나이가 먹었든 어린이든, 여자 회원이든 누구나 다 편하게 대한다”며 “술 안 먹는 사람 억지로 먹이지 않고, 남 헐뜯는 얘기 안하고, 서로 좋은 얘기만 한다. 시국을 토론할 때는 굉장한데, 사람을 대할 때는 정반대”라고 모임의 특성을 설명한다.

김씨는 “<한겨레>는 참 희한한 신문이다. 왜 신문 하나를 같이 본다는 게 끈끈하게 정을 맺으며 형제보다 더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며 “이걸 누가 하라고 해서 하겠느냐”고 되묻는다.청주/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청주 한겨레가족모임 소식지의 글

가난해도 정많던 독자, 배달사원들 그립습니다 17년전 그 때가…

차가운 공기가 옷자락을 파고드는 겨울 새벽 아파트 5층 502호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듯 층계를 뛰어 내려왔다. 며칠 전부터 신문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신문사로 전화통에 불이 나게 전화해 대는 골수 한겨레 독자, 전화해도 신문이 배달되지 않고 신문값만 받아간다면 신문은 벌써 끊었을 것인데 이 독자는 정말로 신기했다. 분명히 내가 그 집 문앞에 사뿐히 놓고 왔는데 신문 배달이 되지 않았다니…이건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 신문이 엄청 많이 들어가 헷갈리는 것도 아니고 그 아파트에는 앞동 한 부, 뒷동 한 부 그렇게밖에 투입이 되지 않아 다른 집에 넣는 것도 아니었는데, 하여간 그 독자분과 약속을 했다. 신문을 갖다 놓을 때 그 집 초인종을 누르라는 것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좋다 해보자.’ 그날부터 당장 초인종을 눌러댔다. 자정이 훨씬 지난 새벽 2시에 말이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일주일을 눌러댔으니 당사자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집 식구들은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 나 같으면 한겨레신문이 아니고 한겨레 할아비라도 절대로 보지 않고 당장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항의전화 한번 없었다. 지금까지 보고 계실 것 같은 그분,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고 한다.(다른 신문 배달하는 사람이 신문을 빼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한겨레>를 보는 독자들은 정말로 정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성탄절이나 명절 때 장갑, 양말, 과자를 선물해주는 사람도 많아서 배달사원까지 이번 성탄절에는 누가 많은 선물을 받아오나 내기를 할 정도였다. 그런 독자들을 만날 때면 <한겨레>는 정으로 똘똘 뭉친 신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런 착한 독자들은 부자가 없었는지 창간 때부터 4년 동안 신문사에 있었지만 부자 독자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한겨레신문을 보는 독자들은 초라한 곳에만 사는지, 좀 산다는 ㅎ아파트에는 한 부도 들어가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에 5층에만 주로 사시고, 가로등도 없는 그 무서운 외딴 집에 사시고, 우암산 중턱 자전거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 끝 달음박질로 10분 뛰어 올라가, 그것도 주인집이 아닌 뒤로돌아 뒷방에만 사는지… 정말로 부자 독자는 초창기에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절에서는 왜 <한겨레>를 봐야 하는지, 명암저수지를 지나 있는 보육원에서도 왜 <한겨레>를 봐야 하는지 늘 불만이었다.(절, 보육원은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 한 부 배달하려면 30분을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정말로 그 당시에는 아파트 층마다 조로록 놓고 올라가는 다른 신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배달사원도 못지않았다. 배달사원은 거의 운동권 대학생들이었는데 청주대·충북대 학생들이 숙식을 같이 했다. 이것도 문제였다. 당시는 데모 집회행사가 왜 그리도 많았는지, 툭하면 ‘학교 행사가 있는데, 집회가 있는데 하루만 봐주세요’ 아니면 ‘시위중인데 밖에 나가면 잡혀갈 것 같으니 하루만 제 구역을 봐주세요’ 하는 부탁이 줄을 이었다. 이 하루가 2~3일이 되는 건 부지기수였고, 이럴 때마다 가슴은 찢어져도 신문사 살림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전 구역을 밤이 새도록 혼자 배달했던 기억이 난다. 석유난로도 없는 사무실에서 3000원의 부식비로 뭘 해먹을까? 고민했던 일, 가끔 순대국밥을 먹을 때면 이것이 진수성찬인 양 맛나게 먹던 학생들… 윤균, 정수, 정열, 정애, 소피아… 모두 보고 싶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는지, 17년이 지난 지금 옛날 일을 생각하니 그리움이 밀려와 콧등이 시큰거린다. 보고 싶다. 꼭! 꼭! 나와라. 얼굴 한번 보자. 그 옛날 그 추억을 생각하며 시원한 탁주 한 사발 합시다.

(청주 한겨레가족모임 소식지 2005년 7월호에 실린 글)

17년 전 그리움/두손기획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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