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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9 17:41 수정 : 2005.07.29 17:43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너무나 억울하면 이렇게 이웃들에 직접 호소한다. 외국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한국 영화에 심심찮게 나오는 장면이다. 백계가 다했을 때 ‘신원’(억울함 풀기)을 하려는 마지막 방법이다. 이것도 안 통하면 원혼으로 남아 구천을 떠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지난 7월28일 시행령이 발효한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이 아마도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9일 ‘편집의 자율성’에 관한 권리(줄여서 편집권)는 발행인(사주)에게 있다며 신문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헌재는 7월20일 신문법에 대한 위헌 심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도 올 3월 비슷한 논거로 신문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뒤인 7월21일부터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짜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창출하고자 어떻게 한 몸통을 이뤘는지를 보여주는 도청 테이프 정국이 시작됐다.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그룹의 정치자금을 전달하는 거간꾼 구실을 했고, 그 총사령탑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앉아 있었다는 게 지금까지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검찰을 관리했다는 구체적 증거도 테이프의 녹취록에는 담겨 있다. 95년부터 조직적이고 은밀히 진행돼온, 이건희 희장의 외아들 재용씨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탈법·편법적 상속·증여 작업과 관련돼 있다는 게 알 만한 이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 · 동 “편집권 사주에 있다”
‘신문법’ 위헌 소송
중앙,도청테이프 내용에 침묵
기자가 사주 대리인 ‘자임’


 그럼에도 중앙일보 편집국은 지금까지는 ‘침묵’이다. 99년 6월 국세청이 홍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을 때, 중앙일보 편집국은 요동을 쳤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으로 몰고갔다. 기자들은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석한 홍 사장 앞에 도열해 “홍 사장! 힘 내세요”라며 응원했다. 사장이 중앙일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보광그룹의 대주주임에도 중앙일보 편집국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으로 규정했다. ‘홍 사장이 곧 중앙일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이런 대응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조차 찾아보기가 어렵다. “뼈아프게” 반성한다는 사설이 실렸지만,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99년 한 번 걸러졌는데 왜 다시 문제삼느냐는 반발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불법 도청을 강조한다. 주미한국대사 직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힌 뒤 홍 사장도 ‘99년 수백억원의 탈세 혐의로 구속당하는 등 인과응보를 치렀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가 신문법 위헌소송을 낸 핵심 근거는 “기자들이 주장하는 편집권은 언론기업주의 부정적 행태를 비판하는 사회·정치적 개념일 뿐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결국 자본을 가지고 신문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에게 주어진 언론 자유가 신문사의 자유, 발행인(사주)의 자유로 둔갑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자는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발행인(사주)의 대리인일 뿐이다. 하지만 언론 자유, 이에 따른 신문사의 논조 보장은 외적인 압력은 물론 발행인(사주)에 의해 좌우돼서도 안 돼야 이뤄진다.

조선·동아와 중앙은 불법 도청테이프 보도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언론 자유는 발행인(사주)의 자유라는 논리를 통해 충격적인 도청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중앙일보의 침묵과 조선·동아의 신문법 위헌소송은 하나로 이어진다.

한겨레는 ‘불법 도청이 인권의 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인식 위에서 동전의 앞뒷면인 조선·중앙·동아와 도청 테이프의 전말을 보도해 가고 있다. ‘동네 사람들~’을 외치고 싶은 신문법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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