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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9 17:45 수정 : 2005.11.08 11:31

한겨레 제2창간

홍석현 주미 대사는 한때 ‘계몽군주’로 불렸다.

홍석현씨는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신문 제작의 낡은 틀을 벗어나 가로짜기 편집과 섹션화와 전문기자제 등을 도입해 ‘젊은 계몽군주’로 불리기도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앙일보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신문 제작 수준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비해 한참 아래에 있었다. 홍석현씨는 3~4등 신문에 머물던 중앙일보의 위상을 바짝 끌어올렸다.

90년대 언론계에서 중앙일보의 부상과 대비된 현상은 동아일보의 추락이었다. 언론계에서는 “중앙일보가 일취월장한 반면, 동아일보가 옛 명성을 잃고 추락하는 것은 사주의 경쟁력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90년대 언론계 한쪽에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능력을 갖춘 홍석현씨 같은 계몽군주형 사주라면 환영할 만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홍석현씨 취임뒤 중앙일보 끌어올려 ‘계몽군주’ 별명
선출되지 않은, 임기도 없는 사주권력 언론 사유화
검은 추문 만천하 드러나도 ‘사주 구하기’ 보도 눈총

하지만 옛 국가안전기획부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에서 홍씨는 계몽군주의 숨겨진 면을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테이프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삼성·홍석현 구하기’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삼성 협박 실패하자 방송에 흘려’라는 7월27일 1면 머릿기사에서 “사회정의도, 국민의 알 권리도 아니었다.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테이프가 MBC에 전달되는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의 목표는 금품갈취였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2면에 “미국 같으면 도청기관 없애라 할 사건 내용 수사요구는 부적절”이라는 기사를 싣고 3면에 “기업협박 …복직로비 …검은 거래 있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2001년엔 “미국 법원, 불법도청도 공익 위한 보도라면 처벌 못해”라는 기사를 실었다. “공공적인 관심사이고 언론사가 합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라면 …불법적으로 얻은 것일지라도 보도를 법으로 막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소개한 것이다.

중앙일보가 평소 같은 목소리를 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와도 다른 보도를 하는 것은, 홍석현씨가 이 신문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홍석현씨가 주미대사를 그만 둔 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중앙일보에 복귀할지는 홍씨의 의지에 달린 문제로 본다.


지난해 미디어경영연구소가 14개 신문사의 기업공시 자료를 분석한 ‘전국 주요 신문 소유지분 현황’을 보면, 종합일간지 10개 가운데 <국민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6곳, 경제지 4곳 가운데 <매일경제>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등 3곳의 사주 소유지분이 30%를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기업공시에서 밝힌 주요 주주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30.03%) △동아일보 인촌 기념회(24.14%), 김재호 전무(22.18%)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43.8%) 등이다. 이에 비해 <경향신문>(77.23%), <문화일보>(38.46%), <서울신문>(39%), <한겨레>(38.24%) 등은 소유지분 가운데 우리사주 비율이 높았다.

폐쇄적 소유구조는 편집권을 좌지우지하게 되고, 그 결과 보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극단적으로 족벌신문 사주들의 가치관이 ‘여론’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진실 보도를 덮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한국기자협회나 한국언론재단 등이 벌인 언론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언론 자유의 저해 요인으로 정치권력보다 사주를 꼽는 답변이 휠씬 많아졌다. 2000년 한국기자협회가 일선기자 496명을 대상으로 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보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으로 언론사주 및 경영진(39.3%)을 꼽았다.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을 지낸 한 언론인은 “일선 기자들은 차장이나 부장의 지시를 받기에 사주의 압력이나 지시를 직접 느낄 기회가 없지만 논설위원이나 편집국 간부가 되면 달라진다”며 “만약 사주한테 반기를 들면 편집국장도 임기를 마치고 50대 중반에 신문사 안에서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족벌언론 쪽은 이런 비판을 강하게 부인한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김대중씨는 사보를 모아 펴낸 <조선일보와 45년>에서 “누가 방(우영) 회장이 편집권을 침해했다는 소리를 한다면 나는 조선일보 주필의 이름으로 그것을 반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편집권은 조선일보의 편집방향과 독자의 알 권리에 반하는 경영 차원의 부당한 영리적 압력이나 주주의 사적 이익에 의해 침해받지 아니한다. 기자인 조합원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지 아니하며 회사는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사 노보인 <조선노보> 제호 왼쪽에 붙어 있는 글이다.

6월항쟁 직후 노조가 만들어졌던 80년대 후반 조선일보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장이 편집국에서 농담처럼 던지는 말 한마디가 그날의 신문제작에 그대로 영향을 끼쳐버리는 참담했던 순간들을 … 편집국의 한 기자는 기자 초년병 시절 편집국에서 목격한 하나의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편집권 행사의 최고회의체로서, 신성불가침한 것으로만 알았던 편집국장 주재하의 부장단회의가 예고없이 방문한 사장의 ‘고함’ 한마디에 풍비박산 나버리는 장면을 … 높고 높게만 보였던 데스크가 저러하거늘 나 같은 졸개 기자야 ….”(88년 12월28일치 <조선노보>)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으로 홍석현씨가 도마에 올랐지만 힘있는 자엔 아부·굴종하는 신문 사주는 홍씨뿐만이 아니었다.

60·70년대 절대권력의 횡포에 대해 입다물고 80년대 권력에 영합해 이득을 챙기고, 90년대 들어 스스로 권력화한 ‘제왕적’ 언론사주. 사주권력은 선출되지도 않았고, 통제받지도 않는데다 임기도 없다.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은 족벌언론 사주의 자유로 전락한 언론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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