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4 18:07
수정 : 2005.08.04 18:10
|
성한표
|
미디어전망대
‘음악캠프’라는 텔레비전 생방송에 출연하여 알몸을 노출한 청년과 이 장면을 3~4초 방송한 문화방송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이 ‘준엄’하다. 인터넷언론협회는 ‘시청자들이 받은 정신적 피해사례’를 접수하여 문화방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퇴폐 공연팀 불랙리스트를 작성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울의 관광명소가 되어 있는 홍대앞 카페와 인디밴드들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비난 대열의 맨 앞에는 역시 신문들이 서 있다. 신문들은 알몸 노출 사건을 일제히 사설로 다루면서 동원할 수 있는 온갖 혹독한 표현은 다 동원했다. 사설의 제목도 선정적이다. “MBC의 엽기적인 성기 노출 생방송” (중앙일보), “시청자 앞에서 바지내린 MBC” (조선일보), “국민 모욕한 MBC 성기 노출 방송” (동아일보) 등 보수적인 신문들일수록 더 준열했다. 이처럼 과장된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한겨레> 역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에 알몸을 노출한 장면이 방송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양해될 수 없는 잘못이다. 방송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보편적인 도덕 감정과 크게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번 방송 사고와 관련해서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무대에서의 알몸 노출과 그 장면의 방송에 대한 사회적 몰매를 지나치다고 보는 반응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알몸 노출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 잘못되었느냐 하는 데 대해 네티즌의 토론에서는 찬반양론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 같으면 한마디로 퇴폐 문화로 규정될 법한 이번 사건에 대해 개성의 표현이나 개인적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지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인터넷의 음란물들을 통해 알몸 노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청소년들 앞에 3-4초 동안 알몸을 노출한 텔레비전 화면이 비쳐졌다고 해서 무슨 큰 난리가 난 것처럼 법석을 떨고 있는 기성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 사고를 단순한 방송 사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퇴폐를 전파하는 방송의 행태’에 비분강개하는 성인들과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젊은이들 사이의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수면 아래서는 온갖 음란 퇴폐를 즐기면서도 수면 위에서는 도덕군자의 모습을 갖춰야 하는 이중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의제기는 분명히 주목해야 할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신문들이 이번 사건을 준엄하게 꾸짖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언론의 일차적인 책무다. 문제는 방송 사고가 단순히 퇴폐 노출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문화의 충돌로 이어졌다는 측면을 신문들이 읽어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하면 알몸 노출을 질책한 신문의 사설은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신문이 독점적인 미디어였던 과거에는 신문의 ‘한계’는 자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매체들이 경쟁해야 하는 지금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신문은 결국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성한표/언론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