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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2 17:05 수정 : 2005.08.12 17:06

‘사상 불건전’ 낙인에 청녕의 꿈 접었죠

대구에서 크지 않은 규모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기세환(67)씨가 한겨레 발전기금으로 1000만원을 납입했다. 기씨 부부는 1988년 창간 당시 각각 250만원을 낸 ‘주요 주주’다.

4.19혁명 당시 경북대에서 통일운동을 주도한 대가로 기씨는 박정희정권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언론에 뜻을 두어 당시 대구일보와 매일신문의 기자가 되고자 했으나,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을 해도 번번이 떨어졌다. 취직이 되지 않는 ‘사상 불건전 청년’인 셈이었다. 결국 기씨는 자영업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노점으로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고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던 기씨가 선택한 자영업은 현재의 동네서점으로 이어졌다. 기씨는 “아들딸도 나와 같은 시련을 겪을까봐 자영업이 가능한 분야를 전공하게 했다”며 “4.19 때 요구한 게 거의 이뤄졌다시피 하니 지금 세상이 좋다”고 말했다.

17년 전에 이어 다시 큰 돈으로 한겨레에 참여한 기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이라며 “일부에서는 새로 기금을 내 도와준다고 해서 <한겨레>가 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지만, 나는 <한겨레>가 살아날 수 없다면 우리 국민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라질 위기에 있는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기씨에게 1000만원이란 발전기금 참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물으니 “나보다도1만원, 10만원을 낸 사람들이 사실은 어쩌면 자기 형편에서 더 힘든 참여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나는 내 집에서 살고 가게 임대료 부담도 없어서 가능했다”고 큰 뜻을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금액은 기씨가 서점에서 몇달 동안 생겨나는 수입 총액 이상의 금액이다. 처음엔 아내의 반대도 있었지만 기씨는 “며칠간 졸라서 승낙을 얻어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울에 사는 아들 경석씨는 “아버지가 한겨레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라며 “우리 삼남매도 모두 한겨레 독자”라고 알려줬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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