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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6 17:06 수정 : 2005.08.26 17:10

2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노말헥산 타이 여성노동자들이 <한겨레> 제2창간 발전기금에 기쁜 표정으로 참여하고 있다. 안산/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원망스럽던 한국 이젠 고마워요

“<한겨레>? 알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지난 22일 경기 안산시 원곡동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외노센터)에서 8명의 타이 여성노동자들을 만났다. “<한겨레>의 제2창간 발전기금으로 써달라”며 다니던 회사에서 받은 위로금 중 100만원을 발전기금으로 내겠다는 연락을 외노센터 박천응 목사를 통해 받고서였다. 이들이 낸 금액은 타이 돈으로 3만밧을 넘는다. 타이에서 대졸 출신 초임자의 평균 월급이 3천∼4천밧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타이에서 웬만한 사람 1년 연봉인 셈이다.

단속실태 취재중 ‘앉은뱅이병’ 접해
곧장 공장취재 약품중독 확인
첫보도 뒤 20일간 추적보도
사업장 전면조사·산재 인정 끌어내

이날 기자가 이들과 다시 만난 것은 7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이들과의 첫 만남은 지난 1월13일, 안산지역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단속실태를 취재하던 중 타이 여성노동자들이 안산의 산재전문병원인 중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무심결에 듣고서였다.

병실 문을 열자 가무잡잡한 얼굴에 불안감에 사로잡힌 5명의 타이 여성노동자가 환자복을 입은 채 누워 있었다. “캔 유 워크?”(걸을 수 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노!”(할 수 없어요)라는 이들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당시 중앙병원장을 방문해 이들의 상황을 확인한 결과, 이름도 낯선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곧바로 공장 취재에 나서 이들의 병이 엘시디 부품 생산 공장에서 쓰던 유기용제인 노말헥산 중독에 의한 ‘앉은뱅이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아침에 취재에 나서다 보니 노트북을 기자실에 놓고 나왔다. 이날 낮 12시께 이들을 처음 만나서 취재가 끝난 것은 오후 4시께. 기사 마감은 30분 앞으로 다가왔고 손에서는 땀이 났다. 다행히 병원 1층 로비에 환자들이 10분에 500원을 넣고 바둑을 두는 인터넷 피시를 발견했고 기사는 메일을 통해 가까스로 송고됐다. 이 기사는 다음날치 <한겨레> 1면에 ‘타이노동자 집단 앉은뱅이병’이라는 제하의 단독기사로 실렸다.

<한겨레>의 첫 보도 뒤 각 신문과 방송의 보도가 잇따르는 등 기사의 파문은 컸다. <한겨레>는 20여일간 끈질기게 이들의 작업환경과 관리감독의 부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방치된 이주노동자 실태 등의 후속기사를 발굴해 보도했다.

결국 경찰과 노동부, 대검 공안부는 물론 총리실까지 사태 파악에 나섰고 전국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 5천여곳에 대한 전면조사와 사업주들에 대한 사법처리 등이 뒤따랐다. 그동안에 이미 귀국했던 3명을 포함해 타이 여성노동자들 8명은 산재가 인정돼 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타이 노동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이들을 병문안했고 손학규 경기지사는 완치 때까지 통원치료와 임시숙소 등 1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기자가 이들과 재회한 날, 서로가 처음 만났을 당시를 기억하고 웃음꽃을 피웠다. 환자복을 벗은 이들은 20∼30대 여느 한국 여성과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완치에 이르기까지는 1년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병원 쪽의 설명이다.

쌀라피(30) 등 이들은 “처음에는 한국이 원망스러웠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20여일의 고되었던 취재를 담당하고 7개월 만에 다시 이들의 근황을 접한 기자로서는 “이제는 한국과 한국사람들의 정성이 고맙다”는 이들의 마음이 한국에 대한 기억으로 두고두고 간직되기를 바랄 뿐이다.

안산/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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