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5 17:16
수정 : 2005.09.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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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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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지난 8월 4일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23일 만에 관객 500만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린다.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그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의미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적개심을 자극하며 일방적인 편 가르기에 익숙했던 우리 국민들이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선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희망이 역설적으로 다가오기에 결코 슬픈 영화는 아니지만 눈물이 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서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었는가, 불타는 적개심으로 분별력을 상실했던 지난 역사가 그렇게 분할 수 없다. 우리가 원래 추구했던 그 무엇이 왜 그렇게 변질되어 있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겪지 않았어도 될 동족상잔의 비극, 그래서 분단의 고착화가 공고해진 그 이유를 이젠 좀 정리도 해보고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나. 55년 전의 피 흘림과 적개심만 존재하는 60년 분단의 역사가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에게 ‘자유를 지켜준 은인’으로 알려진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도 그런 차원에서 적절하다. 이미 54년 전에 내려진 그에 대한 미국의 평가도 이참에 한 번 공론화시켜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오만과 허풍, 현란한 언사로 문민 우위의 체제에 도전한 공화당 우파 정치군인이 왜 대한민국의 영웅이 돼야 하는지, 미국에서조차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적된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은인으로 둔갑해 있는지 한 번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평가를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반만 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주권국가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는 그의 동상을 철거 논란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이 땅의 족벌신문과 보수신문들은 늘 그러하듯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사 분란함을 보여준다. 지난 11일, 맥아더 동상 앞에서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와의 충돌 직후 내보낸 사설을 보자. “이 정권은 미국의 6·25 참전을 뭐라 정의하나”(조선일보), “국가정체성 부정 폭력에 눈감은 정부”(동아일보), “동상 철거에 여당 중진까지 가세한 현실”(중앙일보), “자유민주주의 도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문화일보). 이 내용대로라면 맥아더 동상 철거론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역자들이다.
중앙일보는 중앙시평을 통해 “이성의 마비와 집단적 광기에 기초한 마녀사냥”으로 폄하시켜 버렸다. 나아가 사설에서는 아예 “명백한 사실을 놓고 무슨 토론이 필요한가?”라며 논의조차 거부하는 반지성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힘없는 민족은 말도 못하고 서러움도 참아야 하는 건가. 한번도 지적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한 맥아더, 분단 60년을 맞이하여 이제는 재평가 돼야 된다는 주권국가 국민들의 최소한의 항의를 두고 조선일보에서는 1면에 아예 ‘난동’으로 제목을 달았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생겼을 경우 이를 공론화시키고 조정해 나가는 역할이 곧 언론의 역할이다. 그러나 맥아더와 관련된 보도 태도는 갈등의 조정이 아니라 갈등의 주범으로 비쳐진다. 신문은 지식 사회의 꽃이다. 토론이라는 최소한의 지적 성찰마저 거부하고 일방적인 주장만 강요하는 족벌신문들의 행태야말로 지식사회에 대한 마녀사냥이고 난동 아닌가.
이주현/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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