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이 21일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카메라 과잉 의식하는 김정일의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기사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조선닷컴은 문제가 되자 이날 오후 5시께 “카메라 과잉의식, 2% 부족 정치인” 으로 제목을 바꿨다. 조선닷컴 캡쳐 화면
|
정 장관 쪽 “다분히 악의적,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언론이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인 <조선닷컴>이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카메라 과잉 의식하는 김정일의 대변인?”이라고 표현해 물의를 빚었다. 조선닷컴은 20일부터 2007년 대선 유력후보 4인에 대해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 10가지’라는 기사를 연재했다. 조선닷컴은 “대선을 2년여 앞두고 있으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며 “‘… 안 되는 이유 10가지’는 현재와 미래의 풍향계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관전 사항을 정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기사 취지를 밝혔다. 조선닷컴은 20일부터 고건(고건 ‘당신은 80년 5·18 때 어디 있었나?’) , 이명박(이명박, 유비쿼터스 시대에 웬 불도저?’), 박근혜(“아버지 후광, 알맹이 없는 연예인식 인기”) 등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3위를 달리는 유력 주자들을 줄줄이 도마에 올렸다. 조선닷컴의 대선후보 연재기사는 각 후보들의 의혹에 대한 사실에 입각한 ‘검증’이라기보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과 인상비평을 모아 놓은, 주로 “카더라” 모음이었다. 이 연재물은 네번째 정동영 편에서 ‘무리한 제목달기’와 색깔론으로 막을 내렸다. “아직 유력대선 주자로서 2% 부족하다” 조선닷컴은 기사에서 정 장관에 대해 “아직 유력 대선주자로서 ‘2%가 부족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총평한 뒤 “역시 컨텐츠가 부족한 것 아니냐”, “카메라만 의식한다”, ‘한건주의자?’라며 약점을 지적했다. 특히, 정 장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대북정책에서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 “김정일에게 구슬림을 당했다”, “정 장관이 북한의 대변인으로 전락했다”는 등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이유로 정 장관의 약점을 비판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다분히 ‘정치권 안팎에서 이런 평가가 있더라’하는, 이른바 ‘~카더라’식 보도다.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제목이었다. 조선닷컴이 정 장관을 다룬 기사의 제목은 “카메라 과잉 의식하는 김정일의 대변인?”이었다. 조선닷컴이 이 제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바는 “정 장관은 카메라를 과잉의식한다”는 것과 “정동영은 김정일의 대변인인가”라는 것으로 읽힌다. 복합적 메시지를 한 문장에 담았는지 모른다. 기사 본문에 “카메라 과잉 의식하는 김정일의 대변인?”은 없다 그러나, 기사 본문 어디에도 “카메라 과잉 의식하는 김정일의 대변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한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 ‘이미지 정치’만 한다는 비판이 많지만 정 장관도 비슷한 비판을 받는다”고 말한 부분이 인용되었다. 조선닷컴은 “김정일의 대변인?”이라는 제목의 근거를 실명이 드러나지 않은 미국 국무부 관계자의 입에서 찾은 듯하다. “미국 부시 행정부도 정 장관에 대해 ‘김정일에게 구슬림을 당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 장관이 북한의 대변인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미 국무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것도 이때였다.” 결국 조선닷컴의 제목은 정 장관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고, 대북관계에서 그의 역할에도 부정적인 가상의 인물이 “정동영은 김정일의 대변인?”이라고 말한 꼴이 된다. 조선닷컴의 제목달기는 ‘실수’가 아니라면 다분히 악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 장관 쪽 “다분히 악의적,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전문가들 “보도의 공정성에 위배, 레드콤플렉스 부추겨” 정 장관쪽은 이 기사와 관련해 “너무 황당하고 어이 없고, 이해할 수 없다”며 “대응할 가치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정 장관쪽은 또 “다분히 악의적이고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를 사실인 것처럼 쓰다니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보도의 공정성에도 맞지 않고 교묘하게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는 “제목은 전체 기사의 요약일 뿐 아니라 해석의 프레임(틀)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는데, 서로 다른 인용문을 조합해서 전체 기사의 프레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적절한 제목이 아니다”며 “지나친 제목달기”라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김정일 대변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앞뒤 맥락이 배제된 채 하나의 컷이나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읽혀 정 장관이 김정일의 하수인처럼 각인되게 하는 효과를 줬다”며 “보도의 공정성에도 위배되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현직 통일부장관을 김정일의 대변인인 것처럼 표현한 것은 정부의 통일정책이 북한의 배후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처럼 왜곡될 소지가 있다”며 “레드 콤플렉스를 교묘히 자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정치인에 대한 판세분석이나 민심기행 등에서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은 채 ‘…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형식을 빌어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을 싣는 것은 <조선닷컴>뿐 아니라 우리 언론 전반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의 제목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조합한 ‘~카더라’식의 보도 태도도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조선닷컴은 문제가 된 정 장관 관련 기사의 제목을 오후 5시께 “카메라 과잉의식, 2% 부족 정치인”으로 바꿨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김미영 기자 pjc@hani.co.kr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