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6 18:12
수정 : 2005.10.0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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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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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참다참다 못했던 모양이다. 6개 농민단체 대표들이 방송사 사장들을 만나 농민의 소리도 전해 달라고 하소연하려고 나섰다. 한국방송, 에스비에스에 이어 문화방송 사장도 만난단다. 과격한 시위장면만 내보내지 말고 농민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애걸했단다. 또 정부의 보도자료만 베끼지 말라는 말도 당부했다고 한다.
이들이 방송사를 찾기로 마음먹은 것은 6월에 있었던 국회 국정감사에 관한 보도자세 때문이다. 쌀 협상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감사가 어렵사리 열렸지만 방송은 너무 인색했단다. 정부가 협상내용을 비밀에 부쳐 많은 의문을 자아냈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국별로 쿼터제를 도입하는지, 왜 원조용을 별도로 도입하는지, 왜 중국산 과일의 검역평가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는지 등등을 말이다.
국정감사를 한다던 국회도 변죽만 건들다 말았다. 보다못해 농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 역시 방송은 과격성만 부각시켰다. 더러 농민의 불만을 말했지만 결론은 ‘개방 불가피론’으로 흘렀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다. 그 까닭에 방송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낼 책무가 있다. 그런데 방송이 신문을 닮아가는지 농민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곤 한다.
2년 전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세계화에 항의하여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했다. 개방압력에 눌려 질식할 것 같은 이 나라 농민들의 절규를 죽음으로 말한 것이었다. 얼마 전 2주기를 맞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개방농정에 항거하기 위한 농민시위가 서울에서 열렸다. 그런데 방송은 역시 본질적 문제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청자는 농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또 한차례 전경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나 보다 한다.
그 자리에는 <홍콩TV>가 있었다. 한국농촌을 찾아 왜 농민들이 온몸을 던져서 말하려는지 알려고 왔다. 1주일간 머물면서 현주소를 취재하고 돌아갔다. 오는 12월 13~18일 홍콩에서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린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한국농민은 아주 과격한 것으로 알고 있단다. 한국농민 1000여명이 원정시위에 나선다니 홍콩정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회의가 미국 시애틀,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농민의 항거로 무산된 바 있기도 해서 말이다.
이경해씨가 자결하자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고인의 고향을 찾아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국농촌의 절망적인 현실을 조명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눈물의 들판’이란 기사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이 나라 농촌의 비참한 모습을 담아냈다. 미국의 <시엔엔>은 그의 운구가 고향으로 간다고 속보로 전했다. 막상 서울에서는 경찰의 곤봉세례가 그를 기다렸고 이 나라의 방송은 충돌장면만 담아냈다.
보도에만 농업이 없는 것이 아니다. 농민의 사랑을 받던 문화방송의 ‘전원일기’도 한국방송 라디오의 ‘농사정보’도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멋쟁이 젊은이들이 외제차를 타고 벌이는 사랑행각 따위가 판친다. 아니면 연예인끼리 히히거리는 잡담만 넘쳐난다. 영국에서는 지난 몇 년 새 ‘강가의 오두막집’이란 텔레비전 연속극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런던에 살던 어느 요리사가 농촌에 정착하는 이야기다.
이 나라 식량자급률은 25.3%에 불과한데 개방의 격랑이 쌀마저 삼킬 태세다. 이제 방송이 나서 위태로운 식량안보를 말할 때다.
김영호/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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