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논란 가열…유럽처럼 ‘비싼 수신료’ 로 공영성 강화하려면 국민·정치권 설득 먼저
한달에 한번 내는 티브이 수신료는 얼마일까? 집으로 오는 전기세 고지서를 꼼꼼히 보면, 2500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금액은 1981년 책정된 뒤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24년이 지난 지금, 수신료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방송>이 ‘수신료 현실화’를 내세우며, 수신료 인상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감에서 한국방송은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수상기의 개념을 티브이뿐만 아니라 방송을 볼 수 있는 피시와 차량용 모니터등 수신설비로 확대하는 방안을 연구한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방송이 수신료에 이처럼 달아오른 것은, 미디어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은 지난해 수신료로 5100억원을 거뒀고, 광고로 62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638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러한 경영 위기는 경기침체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케이블티브이, 인터넷 등 뉴미디어 성장으로 전체 광고시장을 나눠 먹기 때문에 비롯됐다. 이처럼 광고시장이 불투명한데도, 방송 제작비는 지난 2000년 2855억원에서 2004년 4359억원으로 늘어났고, 앞으로 투자해야 할 디지털 전환 시설장비 비용은 오는 2010년까지 7451억원, 고화질(HD)프로그램 추가 제작비도 6791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고 있다.이런 이유로 한국방송 쪽은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선진국 공영방송과 견줘 우리나라 수신료가 싼 것은 사실이다. 유럽에선 수신료를 시청료가 아닌 티브이 수상기를 갖고 있으면 누구나 내는 준조세로 보고 있다. 프랑스, 일본, 영국, 독일 등은 티브이 수신료를 연 18만원에서 26만원 정도를 받고 있어, 연 3만원의 우리나라와 견줘보면 몇 배 차이를 보인다.
이들 나라의 국회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에도 수신료를 매년 물가수준 이상으로 올려주는데, 이는 공영방송이 정치권력과 광고주를 의식하지 않고 공영성 추구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신료 인상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방송 국감에선 수신료 인상을 놓고 여야 의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여당의원들은 상업화를 우려한 반면, 야당 쪽은 가시적인 구조조정을 먼저 보여야 수신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공영방송인 케이비에스의 사장이 중간 광고 허용 등 광고 수익을 높이는데 매진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공영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시청률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경영혁신안을 내놓고 수신료 인상안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주문했다. 반면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은 “일본 공영방송인 <엔에이치케이>가 앞으로 3년동안 1200여명의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을 밝혔다”며 “케이비에스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뒤 수신료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윤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국방송 국감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서울을 뺀 지방 시청자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4%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이유로는 ‘가계 부담 증가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34.6%)-‘세금 인상과 마찬가지이므로’(23.6%)-‘케이비에스의 방만한 경영’(13.8%)으로 조사됐다. 찬성하는 응답자들은 수신료 수준에 대해 76.4%가 ‘3천원 이상 4천원 미만’, 16.4%가 ‘4천원 이상 5천원 미만’으로 답했다. 결국 칼자루는 국민 정서다. 하지만 수신료에 대한 국민 정서는 좋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전두환 정권시절 편파방송의 원죄로 수신료 거부운동을 벌이는 등 수신료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 문제는 정치논리와 국민정서, 미디어환경 변화 등 여러 문제와 얽혀 있어 쉽게 해법을 찾기 힘들다. 때문에 수신료를 놓고 현재 한국방송은 갈림길에 서 있다. 수신료를 올려 공영방송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간접·가상 광고 등을 도입해 좀더 상업방송 쪽으로 기우는지다. 김재윤 의원의 자료를 보면, ‘특별히 케이비에스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58.2%에 이른다. 한국방송은 내부개혁과 질높은 방송을 통해 이들을 설득할 대책을 먼저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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