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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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6·25 전쟁은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한 인터넷 매체 기고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강 교수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 쪽은 한나라당과 일부 여당의원, 정부 수사기관과 관련 부처, 재계, 그리고 흔히 ‘조중동’이라고 한 묶음으로 불리는 조선, 중앙, 동아 등 세 신문들이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도 아닌, 한 학자의 기고문에 대해 주요 기관들이 일치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인물이라면 그의 말 자체가 파장을 일으킬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 기관의 관심권에 들어오게 되지만, 강 교수는 그런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사 문제에 대한 비판은 주로 인권적 차원에서 나오던 것이 관행이었는데, 거꾸로 수사를 하라고 다그치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례적이다. 강 교수에 대해 야당이 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대폭적인 손질에 동의했던 야당의 종래 태도와도 맞지 않다. 강 교수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더러 보인다. 맥아더를 ‘원수’라고 표현한 대목도 있는데, 이 표현은 강 교수 스스로 지나쳤다고 인정했다. 이런 부분은 강 교수의 학문적 성실성과 관련된 문제다. 그런데 강 교수의 주장을 비판하는 쪽은 학문적 성실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구절들만을 붙들고 늘어진다. “침략전쟁을 왜 통일전쟁이라고 하느냐”는 비판이 그중 하나다. 침략과 통일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니다. ‘침략’은 전쟁을 시작하는 방식이고, ‘통일’은 전쟁의 목적에 해당한다. 우리가 반공 교육을 통해 배운 “북한이 남침을 통해 적화 통일 야욕을 드러냈다”는 말은 침략적 통일정책, 곧 무력 통일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강 교수의 글에 대해 이렇게 거센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가? 강 교수에 대한 이들의 공격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 이유를 두어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로 가는 것을 방해하자는 의도가, 다른 하나는 ‘공산화 위협’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공포를 제시함으로써 국민의식의 급격한 변화를 막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이 모두 그들의 권력기반이 붕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강 교수의 글에 대한 논란에 참여한 두 진영의 상황인식은 ‘공산화 위협’의 실존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조선일보〉 8월 1일치에 게재된 ‘김대중 칼럼’은 “강정구씨의 ‘통일전쟁’ 운운 발언은 건국 이래 한국의 반공에 눌려 지하에 머물렀던 NL세력이 마침내 지상으로 표출하는 신호탄”이라고 규정하고, “보수적 시각의 한 대학교수는 ‘이 다음 단계는 보수층과 우익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11일치 〈중앙일보〉의 ‘중앙시평’에서 강원대 이관열 교수 역시 강 교수의 주장이 “공산주의자들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떳떳하게 나온다는 시그널”이라고 규정했다. 두 진영 모두 공산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도, 공산화 위협의 실존 여부에 대한 상황판단 차이로 인해 논쟁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상호 불신만 심화시키고 있다. 공포의 실존 여부야말로 막연한 우려나 희망, 또는 신념의 고수가 아니라 토론을 통해 검증해야 할 문제다.성한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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