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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9 18:40 수정 : 2005.10.19 18:40

이주현 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미디어전망대

지난 12일, 난생 처음 북한 땅을 밟는다는 설렘으로 오른 평양행 비행기, 그 비행기엔 부자신문들만 눈에 띈다. 대충 손에 쥔 신문이 <중앙일보>이었다. 1면에 실린 기사 제목들에 현기증을 느낀다. “아리랑 방북…끊이지 않는 잡음”, 아직 이륙도 하지 않은 상태지만 우리는 이미 잠재적인 ‘잡음’의 당사자들이 된 기분이다. 헌법 3조에 명시한 우리 땅, 우리 동포들과의 만남이라는 대의와 명분을 갖고 설렘으로 출발하려는 사람들을 북한의 반인권적 행사를 관광이나 하러 가는 철부지들로 전락시킨 꼴이다.

서해 직항로를 따라 50여분 비행 끝에 도착한 순안국제공항, 남쪽의 새로 지은 거대한 공항과 비교는 되지만 풋풋한 풀냄새와 사람냄새가 나는 여유가 있다. 안내원을 따라 방문한 만경대를 비롯한 여러 시설물들과 5·1 경기장의 아리랑 축전 관람, 사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그 뒤에 숨겨진 모습들 아닌가. 만감이 교차하면서 느낌에 대한 정돈이 쉽지가 않다. 그 속에서 부족하나마 정리된 게 있다면 역사와 민족 앞에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동포들을 봤다는 것이다.

도대체 북한의 책과 시디가 대량 반입됐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단지 누군가 구입을 했다는 사실을 무차별 대량 반입으로 단정하고 이를 ‘잡음’으로 처리하는 의도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책자나 시디를 봐서는 안 된다는 식의 훈계와 이를 불온시하는 태도는 모든 국민을 사상적 미숙아로 대하는 거 아닌가. 통일부의 재량으로 법무부의 신원조회를 생략한 게 그렇게 큰 오류이고 민간단체가 방북단을 모집하는 게 무슨 큰 이익이나 남겨먹으려는 부도덕한 영업행위라도 되는 건가? 같은 날짜 사설에도 나타났듯이 부자신문의 민족과 통일에 대한 빈약한 가치를 드러낸 꼴이다. 아리랑 축전에 참가한 학생들의 인권을 들먹이는 모습 또한 북한 체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닐까. 또 입시지옥에서 신음하며 하루에 1명꼴로 자살을 하고, 다수가 그런 충동을 느끼는, 허약하기 그지없는 남쪽의 학생들은 문제가 아닌가.

이미 북한을 다녀온 분들은 아실 테지만 북한에서 보여주는 외형적인 모습에 사상적 동요나 변화를 겪을만한 시대는 지났다. 그 속에 담긴 역사와 가치 그리고 진한 동포애가 그토록 그리운 것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적인 군사주의에 대항하고, 그래서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북한의 자주적인 역량의 원천이 궁금한 것이다. 그 힘을 한데 모아 통일의 역량을 키우자는 게 방북의 목표 아닌가.

우리 시대의 비극과 왜곡의 결정체인 분단, 이를 극복하는 것은 그 어떤 이념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고,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의 영역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누구나 반쪽짜리 한반도 지도를 원치 않듯이 허리 잘린, 그래서 생명을 잃은 한민족의 존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왜곡시켜가며 ‘잡음’ 정도로 통일의 의지를 잠재우려는 태도는 통일문제를 갖고 장난치는 모습처럼 보인다. 같은 날짜 송호근 교수의 칼럼에서는 강정구 교수에게 “역사에 최소한의 예의”를 주문했다. 그 좋은 지적을 부자신문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통일이라는 숭고한 가치와 민족 앞에 예의를 갖추시라!”

이주현/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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