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간] 고교평준화 보도 한겨레는 달랐습니다
“평준화 지역 고교 사이의 성취도 차이를 근거로 ‘평준화 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을 편 지난해의 한 연구 결과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비교해 보면, 평준화 정책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실증적 증거가 아닌 정치적인 목소리에 좌우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11월3일 서울대에서 ‘평준화 정책 효과의 실증적 검토’를 주제로 열린 교육포럼에서 한 교수가 한 말입니다. 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의 토론회에서 언론의 보도 태도가 도마에 오른 이유는 뭘까요? 그동안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무시하거나 짤막보도 ‘감추고’
정부 자료 감추기 비난 ‘물타고’
연구자 발언 왜곡보도 ‘비틀고’
한겨레,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균등한 교육기회 분위기 조성 한국교육개발원은 10월27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보다 학업성취도 및 고교 3년 동안의 성적 향샹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평준화가 학생들의 학력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다’는 보수언론과 보수적인 교육단체들의 ‘주장’을 ‘실증적 증거’를 통해 반박한 것이지요. 교육학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분석 자료와 연구 방법에서 이전의 평준화 정책 연구에 견줘 매우 높은 질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태도는 학계의 평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조선일보>는 10월28일치 사회면에 2단 크기로 짤막하게 이 연구 결과를 전했습니다. 기사 두번째 줄에 “그러나 이에 대해 ‘평등교육에 무게를 둔 현 정부의 코드에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는 ‘친절한’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 태도는 지난해 9월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발표한 ‘지역간 학력 격차’ 분석 자료를 보도할 때와는 영 딴판입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를 포함해 4개 면에 걸쳐 무려 10꼭지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30년 평준화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동아일보>는 10월28일치에는 연구 결과를 아예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가, 그 다음날치 사회면에 “평준화-비평준화 지역 학력차 연구자 따라 제각각, 정부 ‘정보 감추기’가 혼란 부채질”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짧게 언급한 뒤, “정부가 학력 정보를 독점한 채 일부에만 제공해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발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길게 다뤘습니다. ‘물타기 보도’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물론 기사를 쓸지 말지, 어느 정도의 크기로 실을지는 각 언론사의 편집권에 해당하는 영역이니, 굳이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흠집내려고 사실까지 왜곡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중앙일보>가 그 예입니다.
중앙일보는 10월28일치 3면에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이번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이번 연구의 당사자인 김기석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도 ‘교육부가 자료를 안 주는 게 맹점’이라고 연구의 한계를 인정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왜곡보도입니다. 김 교수가 연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지난해에 한국개발연구원이 수행한 평준화 연구의 자료 한계를 지적한 것을 마치 이번 연구의 자료가 부실했다고 자인한 것처럼 입맛에 맞게 꿰맞춰 보도한 것입니다. 중앙일보의 왜곡보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김 교수가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오보임을 지적했음에도, 중앙일보는 다음날인 29일치 1면 머리에 “‘평준화 보고서’ 참여자들 고백”이라는 문패 아래, “교육부 자료 제대로 안 줘”, “두 달 만에 하느라 죽을 맛”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또 내보냈습니다. 마치 이번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료와 시간이 부족해 연구가 부실했다”고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교묘하게 편집한 것입니다. 이번 평준화 정책 연구를 주관한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평준화정책연구실장은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평준화 연구는 교육개발원 자체 계획으로 지난해 초에 이미 결정이 난 것인데도, 마치 지난해 9월 이주호 의원이 ‘지역간 학력 격차’ 자료를 내놓자 교육부가 갑자기 연구를 의뢰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습니다. 2년여에 걸쳐 공들인 결과를 언론이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연구자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한” 형편없는 연구라고 난도질했으니 연구 당사자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요? 강 실장은 반박자료를 모아 언론중재위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 교수도 중앙일보 오보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자신의 블로그(community.snu.ac.kr/blog/blog.jsp?userId=kskim)에 ‘오직 그리고 온전한 진실을 향하여’라는 코너를 따로 만들어 왜곡보도의 전말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물론 10월28일치 1면 머릿기사와 3면에 연구 결과와 의미 등을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연구 결과 발표 전에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이번 연구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도 자기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가 나오니까 지나치게 크게 보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겨레는 ‘사실’을 비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기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감수하면서까지 보고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 가운데 평준화 정책만큼 끊임없이 논란을 빚고 있는 문제도 없을 듯합니다. 자신의 이해와 계층에 따라 평준화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곤 합니다. 이른바 ‘부자신문’들이 한목소리로 평준화 정책을 ‘만악의 근원’이나 되는 듯이 헐뜯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구매력’이 있는 소수에게만 차별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해 불평등의 대물림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구조를 바로잡고, 두루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이종규/편집국 사회부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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