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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7 18:17 수정 : 2006.03.17 18:17

[가신이의 발자취] 가시던 날도 홍매화 곱더이다

안정순 어르신께 삼가 올립니다.

어르신께서 58년 만에 바깥어른 만난 감회가 어떠신지요? 복중에 막내(오길석·58)를 남기고 떠난 원망보다는 “나 대신 세 아들 키우느라 얼마나 수고했소? 미안하오” 하며 두손 감싸는 부군과 밀린 얘기 나누느라 이승의 자녀들은 잠시 잊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전 “꽃피는 봄날 가고 싶데이…” 소망대로 ‘한 많고 정 깊은’ 아흔 평생을 마감하던 지난 9일, 홍매화 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지요. 요즘 어르신이 묻히신 경남 함안군 군북면 서촌리 선영 주변은 봄꽃 봄풀이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1916년 한학자 안수중의 맏딸로 ‘고고지성’을 울린 어르신은 스무살 나던 해 함안 유림 대표로 기미년 군북만세운동을 이끈 오주근의 손자 세양과 혼인을 하였지요. 그러나 신랑이 13년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되면서 백년가약은 허무하게 끝나고 어르신은 유복자와 위로 두 형제를 억척스레 키워내셨습니다. 남편과 사별 직후 닥친 한국전쟁은 청상인 어르신께 큰 시련을 안겼습니다. 그나마 전답이 제법 있어 먹고사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보릿고개 때가 오면 “동네 아낙들 굶어 애기 젖 안나면 큰일난다”며 주저없이 쌀 퍼담아 주곤 하셨지요. 어르신 상가에서 원근 친척, 이웃들은 저마다 넉넉한 인심의 어르신을 기억해내는 모습들이었답니다. 소학교를 마친 어르신은 칠순이 넘도록 그 유려한 문장으로 마을 상가마다 제문을 써주어 상주와 조문객들을 무던히도 울리셨지요. 혼사 때 사돈댁에 보내는 사돈지(紙) 쓰는 것도 어르신 몫이었습니다. 농한기에는 댁 안방에는 어르신께서 읽어주는 소설이야기를 들으려고 남녀노소가 꽉 들어찼던 일도 기억나시죠? 춘향이가 수청들지 않는다고 곤장 맞는 대목을 얼마나 실감나게 읽으시는지 말꾼들은 금세 눈물을 쏟곤 했는데, 그곳에서는 요즘 무슨 이야기책을 읽어주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정작 당신 장례는 제문도 없이 치러졌으니 이런 걸 세상변화라 해야 할지 아이러니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농장을 하는 큰아들(형석·69), 조그만 사업을 하는 둘째(일석·61)와 달리 유복자로 태어난 막내 때문에 노심초사 걱정이 끊이지 않으셨지요? 사업을 하는 한편으로 민주화·통일운동을 하다 기관에 수시로 불려 다닐 때 어르신 가슴은 숯덩이가 됐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장남마저 부도로 경제 어려움까지 겹쳐 그 강건하던 몸과 정신이 한꺼번에 쇠해지고 지난겨울부턴 치매증세가 들었습니다. 어르신은 병중에도 “일꾼 밥해줘야 한데이. 밥해 주레이” 말하셨지요. 그 외마디가 어르신 곁을 지키던 삼형제 내외, 열한손자 애간장을 타들어가게 하는 줄은 미처 모르셨지요? 홀몸으로 그 힘든 농사 지으며 자식들 반듯하게 키운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르신 계신 그곳도 봄내음이 물씬 나겠지요? 이승 일 자식 걱정 다 잊으시고,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손주들 할아버지와 봄나들이 꼭 다녀오십시오. 색동옷 분홍신 곱게 차리시고요.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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