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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1 20:40 수정 : 2006.04.21 20:44

[가신이의발자취] 방짜수저 무형문화재 김영락씨

김우찬 자랑스런 내 아들아, 어머니도 안녕하시냐. 처와 손주 종원이도 잘 있느냐?

요새 그곳 날씨를 보면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세상 인심을 보는 것 같구나. 하늘이 도우셔 강릉 우리 고향에 올핸 큰 산불이 없어 다행이구나.

아들아! 15년간이나 내 밑에서 참방짜수저 배우면서 섭섭한 것 많았지? 칭찬 한번 제대로 안해준 것 나도 잘 안다. 네가 나태해져선 안되겠기 때문이란다. 네가 기를 쓰고 만들어내도 “뭐하러 만들었나”며 핀잔 주기 일쑤였지. 내가 열세살부터 네 할아버지 ‘치’자 ‘근’자 어른한테 배울 때 생각이 나는구나. 요즘은 그래도 생활이 나아져 우리 수저를 사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해방 후 값싼 양은 수저가 들어오면서 판로가 막혀 힘든 시절이 있었단다. 하긴 요즘도 한벌 만들어야 돈 십만원이 채 안되니 누가 이 일을 전수하겠냐마는 최고의 수저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잃어선 절대 안된다. 6·25 때 영천 장터에서 한 시간 남짓 만에 500벌 넘게 팔아 이를 밑천으로 북평, 제천, 서울 만리동 등지에 점방을 낸 적도 있었지, 허허. 피란 나갈 때 솥단지며 쌀이며 이고 지고 가지만 정작 수저는 못 챙겼던 탓이지.

아들에게 가난 물림 싫었지만…
수십번 쇠 담금질하는 은근과 끈기
3대 이은 ‘장인정신’ 잊지마라

수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들아? “젖 떼면 밥숟가락 들고, 죽으면 숟가락 놓는 게” 우리 인생이란다. 그만큼 인간들하고 가장 가까운 게 바로 수저지. 방짜수저로는 도저히 입에 풀칠할 수 없어 10여년 미싱장사네 뭐네 하며 외도한 적이 있었다. 너에게는 가난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오죽하면 쉰여섯 손자 볼 나이까지 떠꺼머리로 있다가 네 어미 만났겠느냐.

80년대 후반 조상님들이 꿈에 나타나 “왜 방짜일 안하느냐”며 꾸짖으시는 것이었다. 무려 3년에 걸쳐 그러시더구나. 그래 다시 ‘호비칼’(쇠칼)을 잡게 된 것이지.

아들아, 쇠를 두드려 만드는 것이 방짜공법이란다. 그렇다고 그릇, 수저, 징, 대야, 꽹과리 등을 두드려 만들었다고 해서 참방짜가 될 수는 없다. 구리 한근에 상납(주석) 4.5량을 합한 참쇠로 만들어야 참빛을 띠고 참소리가 나며 참모양을 이루고 참뜻을 얻어 참방짜가 되는 이치다. 이 다섯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저 방짜수저일 뿐이다. 참방짜 수저 한벌이 나오기까지는 사흘을 두드리고, 펴기를 반복해야 한다. 불에 너무 달구면 두들길 때 쇠가 헤지고 너무 식으면 찰기가 적어 깨지고 만다. 망치 자국이 울퉁불퉁한 숟가락을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불에 익은 때를 호비칼로 벗겨내면 놋쇠 반짝이는 살결이 드러난단다. 줄질을 거듭하며 자루와 자루 끝에 죽절(竹節)이나 연봉(蓮蓬) 등을 조각하면 숟가락 하나가 완성되느니라.

아들아, 네가 집안 어려운 것 알고 공고 졸업하면서 일찌감치 나를 이어 참방짜수저 전수조교가 된 게 한편으론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단다. 그런 네게 꼭 들려줄 말이 있단다. 너도 몇차례 목격했지, 아마. 대학교수들하고 언쟁하던 것 말이다. 그분들 책을 많이 읽어 나름대로 이론은 튼튼하지만 현장 경험이 없어 탁상공론인 경우가 종종 있더구나. 다 지난 얘기지만 무형문화재 지정 때도 그런 분들이 주도하다 보니 우리 같은 학식 짧은 쟁이들 현실을 몰라주어 안타깝기도 했단다. 관에서도 이런 실태를 잘 좀 파악해주면 좋으련만…. 못난 애비가 괜한 소리 했나 보다.

16면

우찬아, 너도 나더러 ‘앞뒤 꽝 막힌 사람’이라고 했지? 이 녀석아 그렇지 않으면 못하는 일인게야, 우리 일은. 그게 바로 장인정신 아니겠니. 한눈 팔지 않고 한길을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 한점 부끄럼 없는 우리들 삶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아들아. 그럼 가족들 건사하면서 잘 지내거라.

@ 추신=오는 단오절 강릉 남대천 둔치에서 열리는 시연회 때 네 실력 한번 맘껏 보여주려무나.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이 글은 주인공의 삶을 재구성해 기자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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