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발자취]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아버지 얼 우즈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축하하고 스스로를 존경하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자신은 단 한 사람뿐이란 사실을….”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를 길러낸 아버지 얼 우즈는 평소 아들의 역할 모델이었다. 얼 우즈가 4일(한국시각) 74세를 일기로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1986년 심장수술을 받고 1998년 전립선암 진단 후에도 아들 대회를 관전했다. 2004년 암 재발후 암세포가 온몸에 퍼지면서 지난달 조지아주 마스터스대회엔 처음 동행하지 못했다.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라며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크리스마스에 아빠와 골프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왕따 아들에게 “스스로를 존경해라”가장 친한 친구이다 최고의 스승 암 재발로 사망하기 전까지 관전 1932년 캔자스주 맨해튼에서 6남매중 막내로 난 얼 우즈는 캔자스주립대 시절 포수로 활약해 ‘빅 에이트’ 콘퍼런스야구대회에 출전한 최초 흑인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얼은 태국 출신 쿠틸다와 재혼해 43살에 타이거 우즈를 낳았다. ‘타이거’란 이름은 베트남전에 육군 특수부대원으로 참전 당시 전우의 별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중령 예편한 그는 아들에게 “골프 우승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그는 2000년 타이거우즈 재단이사장 시절 낸 <우즈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원제 Start Something, 청림출판)에서 아들과 독자들에게 아버지로서, 선배로서, 친구로서 때론 나즈막히 때론 단호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번 한 실수에 집착하다보면 계속해 반복하지만, 실수를 인정하면 그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니?” “어렸을 때 우즈는 자주 따돌림 당했다. 소수민족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혼혈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어린이들이 거의 하지 않던 골프를 했다. 어떻게 하면 왕따를 극복할까.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괴롭힌다면 이렇게 말하라. ‘네 생각은 알겠지만 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야’ 여러분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2등 한 게 어쨌단 말인가. 오직 한 사람 또는 한팀만이 자신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감동적인 일이다” “불평은 사람을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유치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자세는 주변사람들 사기까지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친구 배낭에 재미있는 문구 붙이기, 할아버지께 예고 없이 전화하기, 몰래 집안 일 도와 부모님 일손 덜어드리기, 노숙자 보호소를 찾아 오후 시간을 보내기, 입원 어린이들과 놀아주기…. 이런 일들을 종종 하거라, 네게 큰 기쁨이 넘칠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 우즈야!” 얼 우즈는 “학교숙제를 안 하면 골프연습을 시키지 않았고, 골프를 즐기도록 자유시간을 많이 주었다”고 자신의 책에서 회고했다.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의 말씀들은 내 삶에서 최고의 교훈이 됐다”고 했다. 그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얼 우즈를 추모했다. “그는 대단한 아버지이며 코치, 정신적 지주, 군인, 남편, 친구였다. 만약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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