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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4 19:39 수정 : 2006.07.14 19:39

신경섭 전 기상청장(가운데)이 랑탕 히말라야 등반 중 동료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산악회 제공

[가신이의 발자취] 신경섭 전 기상청장

산 좋아하다 선배들 목숨 앗은 기상 연구
세계 2번째 디지털예보국으로 발전시켜
퇴임 뒤 산으로…알래스카 매킨리서 타계

기상과 등산에 바친 인생이었습니다, 형님의 쉰다섯 해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산악기상을 하겠다”고 세운 뜻에서 한치 벗어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언제나 등산에 목말라했고 기상선진국 도달에 진력했습니다.

시작은 〈경기고산악부 조난사〉를 펴내면서 많은 선배들 목숨을 앗아간 기상이변을 연구하겠다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래러 서울대 문리대 기상학과로 진학했고, 당연히 문리대 산악회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와 텍사스A&M대에서 첨단 디지털기상학을 공부한 형님이 기상청에 특채된 때는 중앙기상대가 기상청으로 승격한 1990년이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시스템공학센터 선임연구원이라는 좋은 자리를 박차고나와 박봉과 격무를 무릅써야 하는 공무원 길을 택했습니다. 그건 한신대를 설립해 학장을 역임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낸 외조부 김재준 목사가 민주화 투쟁의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1999년 슈퍼컴퓨터가 들어오면서 기상개발관이던 형님은 디지털예보라는 새 루트 개척에 나섰습니다. 대기를 여러 층으로 나눈 뒤 각 층을 다시 바둑판처럼 분할한 격자점에 자료동화과정을 거친 여러 관측소 측정치를, 대기운동을 가상 재현하거나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디지털모델에 입력해 가까운 미래의 대기상태를 예상하는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강수확률 몇%라는 선진 기상예보를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그래픽예보, 도표예보, 문자·음성예보로 가득 찬 기상청 홈페이지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클릭하는 즉시 경도와 위도, 온도, 파고(波高)가 떠오르는, 세계에서 두번째 디지털 기상예보 국가가 됐습니다.

형님이 땅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날, 11일에는 올해 첫 태풍 에위니아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상청 홈페이지는 접속이 안될 정도로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빈틈없고 자상한 정보 제공에 온 국민이 눈과 귀를 모으고 있습니다. 예보국장과 기상청장으로 계시던 시절 우리는 산악기상의 선진국이기도 했습니다. 히말라야를 찾은 모든 한국원정대는 형님이 위성전화로 알려준 기상정보를 듣고 등정 날짜를 잡아 멋지게 성공하고 돌아왔습니다. 외국원정대에 정보를 구걸하러 다니던 처지에서 가르쳐주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경기고 1학년 때부터 다닌 산은, 그러나 형님 자신에게는 언제나 갈증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평원 한가운데 일리노이에서도, 광활한 텍사스에서도 산은 언제나 멀리 있었습니다. 스물두 시간 동안 한숨 자지 않고 차를 몰아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집 주변에서 야영을 하며 밤새워 부르는 캠프송 속에만 있었습니다.

고국의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산은 더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럼에도 경기고산악부 ‘라테르네’ 회원들과 틈틈이 추억의 암벽산행을 했고 문리대산악회 간사장으로 창립50돌 기념 무즈타그아타 원정대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습니다. 올 1월 말 기상청장 퇴임 후 한국산악회 기획이사를 자청해 60살 이상 국민을 에베레스트에 올리려는 실버원정대를 총지휘했습니다. 동시에 10년간 못 다닌 산을 맘껏 다녀보겠다며 킬리만자로, 네팔트레킹, 매킨리를 쉴 새 없이 가시더니 마침내 매킨리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산에 가서 죽었으니 여한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성년으로 접어드는 딸 윤하는 결혼식장에 누구 손을 잡고 들어간단 말입니까? 형수님은 신혼여행 갔던 저 설악산을 누구랑 다시 찾는단 말입니까? 아버지와 약속한 지리산행만 손꼽아 기다리던 재하에게 제대 사흘만에 닥친 비보는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리라고 했습니다. 아쉬워도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합니다. 생전 즐겨 불렀던 〈설악가〉처럼, 꿈같은, 산행 같았던 인생을 묻어야 합니다. 영면하십시오.


이 글은 6월30일 매킨리 등정 중 별세한 신경섭 전 기상청장의 문리대 산악회 후배로 〈산과 사람〉 편집장을 지낸 박기성씨가 보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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