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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0 19:38 수정 : 2006.07.20 19:38

[가신이의 발자취] 사법개혁 앞장선 고 한기택 판사

지리한 장맛비가 온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커먼 먹구름 사이에서 파란 하늘과 햇빛을 갈망하는데도 말입니다. 기택형이 1년 전 오늘 말레이지아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뒤 나라 안팎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작금의 법조비리와 사법부 독립에 대한 열망, 그에 대한 저항세력의 발흥 등, 어둡고 쓸쓸한 시대에 법조 3륜의 존경과 추앙을 받은 ‘임기추상 대인춘풍’(臨己秋霜 對人春風)의 전형인 형의 체취가 더욱 그립습니다.

70년대 영동고교 시절 학업과 특별활동을 병행하면서도 탁월한 업적을 쌓아가셨습니다. 방송반 활동이 꽤나 시간과 정열을 빼앗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솔선수범하며 밤새워 DJ, 엔지니어, PD 일을 도맡아 1인3역을 해냈습니다. 방송제 팜플렛을 서울 소재 각 학교에 전달하기 위해 게으른 후배들 데리고 다니면서 초청장 돌린 일, 학교 신문에 형의 신당동 자택 함석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대한 느낌을 멋들어지게 풀어내어 기고한 글 등등…. 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진정한 인문주의자이신 형의 후배 사랑은 화천에서 군 법무관시절, 아마 신혼 초였을 겁니다. 친구 면회 뒤 서울로 상경 못하고 꽁꽁 언 몸으로 형의 단칸 관사에 찾아간 후배들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따뜻이 감싸안던 형이 보고싶습니다. 언제나 따스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했던 형. 법으로부터 소외된 이웃 편에서 재판하던 형. 정의롭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신념을 몸으로 보여준 형.

동사무소 직원에게 얼떨결에 법무상담을 해주자 그 직원이 주스 2병을 들고 오자 극구 사양하며 돌려보내던 형. 고등법원 관용차를 제공 받았지만 형수님과 가족은 ‘단 1초’도 차에 태우지 않은 형. 반면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에 대해서는 엄격한 판결을 내려 서민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던 형. 2차 사법파동 당시 선비 외모와는 달리 강골의 기개로 사법부 수뇌부 개편을 촉구하는 성명과 서명을 주도했던 형. 당시 뜻을 같이한 동료 판사들과 ‘우리법연구회’를 만들어 사법부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사법파동때 수뇌부 개편 촉구성명 주도
공직자·정치인 엄격한 판결 ‘강골 기개’

형을 기리기 위해 영동고교 총동창회는 지난 1월 ‘제1회 자랑스러운 영동인’으로 선정했습니다. 사법부 개혁과 법조문화 개선에 앞장선 형에 대한 상일 뿐 아니라 인문주의자로서 인간에 대한 가장 진솔된 휴머니즘을 베푼 형에 대한 상이라 믿습니다.

기택이 형!

이제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마음 속에 내내 미련과 아쉬움으로 떠나보내지 못한 형을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승에서의 사랑을 완성 못한 형수님과 알토란 같은 슬하 2남1녀에게도 신경쓰는 후배가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기택형! 그동안 좋은 인연이었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히 잠드세요.

이 글은 지난해 7월21일 별세한 고 한기택 판사 1주기를 맞아 고교 1년 후배로 3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눈 오권수(47·신도SDR 영업국장) 독자께서 보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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