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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0 19:43 수정 : 2006.07.21 00:39

‘재계의 부도옹(不倒翁)’,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20일 오후 2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

고인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현대와 한라그룹의 창업 신화를 일군 주역이었다. 고인은 일본 오야마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와 <대한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을 거쳐 76년 대표이사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현대건설을 굴지의 건설회사로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재계에선 오늘날 ‘범현대가’ 그룹에서 누리고 있는 건설과 중공업 사업 부문은 대부분 고인이 뿌린 씨앗에서 나온 줄기로 보고 있다. 특히 불도저식 경영은 형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판박이했다는 평가를 들었고, 이런 점이 형과 결별한 배경이 됐다.

고인이 독자적으로 설립한 현대양행, 만도기계, 삼호조선 등은 모두 ‘세계 최대’를 꿈꿨다.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마다 주변에서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이냐”고 물으면, 고인은 “사업가는 미래를 볼 뿐이다”라며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80년대 초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그를 ‘부실 재벌의 대명사’로 지목하며 당시 주력 기업이었던 현대양행을 빼앗았다. 그는 첫 좌절을 맞봤다. 이후 만도기계로 재기를 꿈꾸다가, 89년 중풍으로 쓰러져 기업인으로서의 삶이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한라시멘트, 삼호조선 등 과감한 사업 확장을 이끌어 한때 한라그룹을 재계 순위 12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97년 12월 외환위기의 여파로 한라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그의 신화는 막을 내렸다.

20일 밤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고인의 조카인 정몽준 의원이 헌화를 하며 조문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고인은 둘째아들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에게 경영을 맡겨놓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해체된 그룹의 재건을 틈틈이 모색해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주식회사 만도(옛 만도기계)를 인수하기 위해, 조카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여러차례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로,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의 경영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형제 6명 가운데 5명이 세상을 떠났고, 막내 정상영 케이씨씨(KCC) 명예회장이 남아 있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한 임원은 “이제는 범현대가의 가족회의를 볼 수 없게 됐다”며, 고인의 별세를 아쉬워했다.

유족으로는 정몽국(53) 전 배달학원 이사장과 정몽원(51) 한라건설 회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은 24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선영. (02)3010-2632.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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