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한국 기독교의 큰 별 강원룡 목사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는 정한 때가 있으며, 영원자가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사람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지혜자의 말씀을 들은 바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 가는 인생인 줄 알지만, 강원룡 목사님의 홀연한 부음을 듣고 우리가 큰 충격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강 목사님이 종교계와 사회 어른으로서 채우시던 자리가 그만큼 컸던 것을 새삼 깨닫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강 목사님, 목사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이미지는 창조적 개척자로서 영원한 청년상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운명처럼 주저앉거나 낙담하지 않고,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도전 정신으로 목사님은 평생을 사셨습니다. 수많은 양심적 청년 키워낸 경동교회 초석 놓고‘크리스찬아카데미 운동’ 통해 시대정신 일깨워
‘바다 같은(여해)’ 목자로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1917년 함경북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신 후, 18살 때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에서 은사 김재준 목사를 만나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시고, 90평생 험난한 한국 현대사를 때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때론 창공을 나는 흰독수리처럼, 시대를 남보다 늘 30년쯤 앞질러 달려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기독교 신앙을 믿고 증언하시되 교리 체계로나 학문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항상 삶 한복판에서 생명의 종교로써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945년 남하하신 이후에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 형제단’ 운동을 중심으로 해 오늘의 경동교회 초석을 놓기도 하셨지요. 경동교회는 교인수 규모로서는 대형교회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경동교회의 말씀강단에서 설교하신 목사님의 참신한 설교를 듣고 방황하던 이땅의 수많은 청년들이 신앙을 얻고, 훗날 우리 사회 각 분야 큰 동량으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보여주신 종교지도자로서 또다른 뚜렷한 이미지는, 한 손엔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성경을 들고, 복음진리를 현실 상황 속에서 되살려내는 빵 굽는 사람이었습니다. 화덕에서 막 구워낸 따끈한 빵처럼, 주부가 솥에서 밥그릇에 막 담아낸 김나는 밥처럼, 그렇게 ‘생명의 말씀’을 목마르고 진리에 배고팠던 이땅의 청년들에게 먹이신 큰 목자였습니다. 다시는 경동강단에서 목사님의 명설교를 듣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그리움과 서운함이 더욱 맘에 가득합니다. 종교진리와 삶의 현실을 접촉시켜 ‘현실생명’을 살려내려는 선각자로서 목사님의 통찰은, 1965년 한국 사회사에서 최초로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를 창설하시고, 그 운동에 온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대화단절과 적대관계로 갈등만이 점증하던 한국사회 격동의 40년간, 목사님이 이끌어 가셨던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 운동은 기적과도 같은 결실을 한국 사회에 쏟아내셨습니다. 정치 경제 노동 매스컴 예술문화 여성 환경 종교 등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수많은 지도자들이 대화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창발적으로 추스르며, 서로 배우며 다른 생각을 경청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특정 종파 목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목자’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존경하는 강 목사님, 목사님의 사부이신 김재준 목사께서 여해(如海)라는 아호를 지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맑은 강물만이 아니라 오염된 강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포용력과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바다와 같은 목자가 되라”는 기원이자 예언이었겠지요. 목사님의 가장 지속적인 두가지 관심은 종교간의 대화협력 증진과 생태환경 회복을 위한 생명문화 창달 운동이었습니다. 스승의 예언대로 목사님은 90평생 살아오신 동안 최선을 다했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고, 후회 없는 삶을 사셨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슬픔을 이기고 목사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평화포럼’의 과제, 곧 남북 7000만 겨레가 전쟁의 비극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화협력을 증진시켜 정의와 자유가 입맞추는 민주 평화통일의 대동세계를 이뤄내는 일에 남은 우리가 최선을 다할 것 입니다.
여해 강원룡 목사님, 이제 제한된 시공 안에서의 모든 염려 놓으시고, 그렇게 평생 믿고 가르치셨던 ‘영원한 사랑의 신비자’ 품 안에서 안식하소서. 김경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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