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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7 21:04 수정 : 2006.09.27 23:13

28면

일제치하 동아대회서 1500·5000·1만m 석권
60년 영화배우 하상남씨와 백년가약 맺어
92년 셀레늄 비누로 독일발명상…사업가 변신

[이사람] 한국 빙상 국가대표1호 고 이효창씨

사랑하는 여보, 하상남 사장!

내가 이곳에 온 지 벌써 한달이 지났구려. 그리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내 예 오는 길 챙기시느라 참 수고 많았소. 여든네 해 이승-아니 여기서는 저승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허허-에서 내 삶은 어찌보면 복 많이 누린 시간 아니었나 하오. 3만석지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선 국가대표로, 해방 뒤엔 태극마크를 달고 스피드스케이트 국가대표 1호로 스위스 생모리스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으니 말이오. 송도고보 시절 당시 전조선빙상선수권대회에서 전승의 기록으로 일본 대학의 선수들을 물리치고 빙상계를 제패했을 때, 그 기분 당신도 잘 이해 못할 겁니다. 5학년 때인데 1만m를 17분55초로 일본 신기록을 세웠지요. 이어 열린 동아대회에서는 1500m, 5000m, 1만m 세종목을 휩쓸어 만주, 조선, 일본 세 지역을 완전 석권하니 일본 사람들 코가 납작해졌지요. 여보, 기왕 자랑하는 김에 조금 더 하리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재는 버릇 남 못준다고요, 허허…. 해방 뒤 제5회 동계올림픽에 한국대표 주장 격으로 출전해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서양 선수들과 겨룰 만하다는 실력을 인정받았지요. 귀국길에 노르웨이 빙상협회 초청으로 그 나라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500m에서 2위로 입상했어요. 경기를 참관하던 황태자가 대회위원장한테 시합을 잠시 중단시키라고 하더니 경기장 중앙 높은 곳에서 특별상을 시상했지요.

여보, 이번 기회에 당신께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해방 다음다음해 일이지요. 하루는 이승만 박사가 부르시더니 유엔에 가 전달하고 오라며 밀서를 내밀어요. 미국 눈을 피해 조심하라며 말이죠. 밀사를 맡기신 거였지요. 미국에 있던 모윤숙 선생과 유엔본부에 전달했어요. 대한민국 건국에 내가 조금이나마 역할한 것에 대해 당신이나 우리 딸들도 자랑스러워해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보, 영화배우로 잘나가던 당신과 백년가약을 맺은 게 1960년이었지요. 1947년 〈자유만세〉로 데뷰해 하연남이란 예명으로 50년대 김진규, 김승호씨와 〈처녀별〉로 히트한 당신 참 아름다웠지요. 나한테 시집와 마음고생 이만저만 아니었지요? 미안하오, 여보. 우리가 한 지붕 이고 살면서 그래도 참 많은 일 했어요. 기억나오? 1992년 10월말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발명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일 말이오. 셀레늄이 함유된 물질을 이용해 만든 세리온이라는 노화방지 비누를 발명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지금은 흐뭇한 추억거리지만 당시는, 참…. 30년 이상 연구 결실이라 보람과 가치는 더욱 빛났던 게 아닌가 하오, 여보!

경성여전 다니다 전쟁으로 그만둔 당신이나 일제 말 일본상공제약 영등포지사에서 일했던 경험과 천성적인 호기심이 우리를 발명의 길로 이끈 게 아닌가 하오. 그때 언론들은 ‘빙상-은막 스타, 무공해 세리온비누 개발’ ‘탈모방지 특효, 개당 1만원 수출’ 등 대서특필하고 그랬지요. 97년 미국 식품의약청 승인을 받아 효능을 입증했으니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지요. 대기업의 자본을 앞세운 물량공세로 개발효과도 물거품이 됐지만, 하지만 다 지나간 시절 이야기구려. 허허.

사랑하는 하상남 사장. 당신께서 내 장례식 후 대통령님과 국무총리님 등께 청원서를 보냈다고 들었소. “…이효창은 목숨을 바쳐 48년도 건국에 이바지하고, 빙상계에서 국위선양을 하여 대한민국을 빛내었는데 정작 본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늦었지만 대한체육회를 통해 체육훈장을 추서해 주셔서 부디 노부부의 한을 풀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6년 9월1일 빙상인 이효창의 처 하상남”

여보, 문화관광부에서 추서를 추진한다니 고맙소만 굳이 집착하지는 마오. 그저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소. 내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사랑하는 여보, 내 못한 일, 당신이 마저 다 마치고 만나시구려.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1922년 7월 2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에서 출생

△전일본 빙상선수권 1500m·5000m 신기록 우승(1943) 노르웨이세계선수권대회 1500m 2위, 5000m 3위(1948)

△개성 송도고보(1942) 고려대(1948) 졸업, 연세대특허법무대학원 수료(1994)

△상공부장관 비서관(1948~49) 외자구매처 비서실장(1949~51) 거제동심고아원 설립·운영(1951~54)

△신영기계공업(1959) 무림산업(1968) 효창세리온(1993) 설립, 북미주생약연구회 이사(1995)

△우수발명품 상공부장관상(1984) 특허청장상(1991) 제네바국제발명품전시회 수상·독일IENA국제발명품전시회 대상(1992) 대한민국특허기술대전금상·국제발명전시회 금상(2002)

△2006년 8월26일 오후 8시20분 별세

이글은 8월26일 별세한 이효창씨가 부인 하상남씨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기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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