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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5 18:51 수정 : 2007.08.05 18:51

고 이우섭 선생의 상여가 4일 장지인 김해시 장유면 반룡산으로 향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영남 기호학파 ‘거유’…방상씨탈·만장 200여개 동원

지난달 20일 별세한 영남 유림의 큰어른인 화재 이우섭(76) 선생의 장례가 4일 선생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장유면에서 전국 유림장으로 치러졌다.

조선 중종의 15대 손인 화재 선생은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으로 이어지는 영남 기호학파의 후예로 200여명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선생은 영남 기호학파의 거목인 부친 월헌 이보림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추연 권용현 선생 등 여러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그는 고향에 있는 월봉서원과 월봉서당을 지키며, 평생 도포를 입고 갓을 쓰는 전통방식에 따라 선비의 삶을 살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2000년 5월 〈화재문집〉 27권으로 간행됐고, 10권 분량의 글이 남아 있다. 막내아들 준규(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씨와 손자 종한(부산대 한문학과 대학원생)씨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유림회의인 ‘개좌’는 지난달 28일,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전국의 유림들이 모여 유월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유월장이란 초상난 달을 넘겨 치르는 장례식이라는 뜻으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유학자가 별세했을 때 하는 전통 장례 의식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거의 사라져, 유월장이 열리기는 97년 경북 청도군의 한학자 박효수 선생의 장례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방상씨탈들이 악귀를 쫓는 춤을 추며 장례행렬을 이끌고 있다. 이 탈들은 이도열 탈 명인(명고성 탈박물관 명예관장)이 약 10일 동안 오동나무를 깍아 만든 것으로, 문화사료로 보존될 예정이다. 김해/연합뉴스
이에 따라 16일장이 된 화재 선생의 장례식은 전국 유림과 문하생 등 10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전통 유림장으로 거행됐다. 월봉서원에서 출발한 장례행렬은 악귀를 쫓는 방상씨 탈과 200여개의 만장을 앞세워 2㎞ 정도 떨어진 선산의 장지까지 이어졌다.

장례위원장 겸 호상을 맡은 충남 천안의 유학자 임용순(76) 선생은 “이우섭 선생은 성리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많은 후학을 길러낸 학문과 덕망이 높은 유학자였다”며 “장례식까지 500년 전통의 유월장으로 거행된 만큼 여러 후학들은 선생의 학맥을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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