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
-늘 참교육을 사랑하셨던 고 김현준 선생님께
지난 7월7일 선생님도 모르게 여러 후배와 지인들이 모여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였을 때만 해도 환한 웃음 지으며 투병 의지를 밝히시던 선생님. 이렇게 빨리 그 환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7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 교육과 전교조를 걱정하시더니 어찌 이리 허망하게 떠나신단 말입니까. 1975년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제적되었다가 80년 민주화의 봄에 복학하여 83년,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 서울 신월중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을 제가 처음 뵌 것은 옆 학교에 처음 발령받고 출근하던 버스 안에서였습니다. 소탈한 웃음으로 말을 걸던 선생님에게 이끌려 햇병아리 교사였던 저는 화곡동 곰팡내 나는 중국집에서 밤늦도록 가까운 학교 선생님들과 만나 우리 아이들과 교육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나누며 답답한 가슴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것이 지역 교사 모임으로, 86년 오랜 교직 사회의 침묵을 깨고 역사적인 5·10 교육민주화선언으로 이어졌고, 선생님께서 제창하신 촌지거부 운동은 전국적으로 크나큰 호응을 얻어 전교조 참교육 운동의 토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전국의 교사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는 데 큰 몫을 하셨습니다. 89년에는 서울지부 부지부장으로 전교조 창립에 앞장서셨고 그로 인해 해직되자 90년에는 재야민주단체인 전국연합의 사무처장을 맡아 투옥까지 당하셨습니다. 당시 제게 비친 선생님의 모습은 언제나 아이들의 처지에서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애쓰며 동료교사들에겐 소탈하고 정이 많아 순박하면서도 일에는 참으로 열정을 다하셨습니다. 전교조가 합법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자 선생님은 96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국 노사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와 99년부터 대장암이 발병한 2001년까지 대외협력실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합법화된 전교조의 기틀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교원노조 건설을 주장하면서도 참교육 실천과 사회민주화운동으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단결하여 함께 가자!”고 호소하던 간절한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전교조가 창립된 지 어언 18주년이 되었건만, 시험과 성적 비관으로 아이들이 자살하고 심야 보충과 강제 자율학습으로 입시 중압에 시달리던 당시 전교조 결성 때 우리 교육 현실이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이들과 학부모와 함께 참교육을 향해 가자던 그 뜨거웠던 다짐을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과연 지금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가. 우리 교사들은 신명나는가. 학부모에게 우리 교육은 희망인가. 안타깝고 애끓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꿈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소서. 사랑하는 선생님, 김현준 선생님!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참교육 운동’ 김현준 전 전교조 부위원장 별세 ‘참교육 실천 운동’에 힘써 온 김현준(53)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이 16일 오후 6시10분 서울대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숨졌다. 김 부위원장은 1983년 영어 교사로서 서울 신월중 교단에 선 뒤, 86년 ‘5·10 교육민주화선언’에 참가하고 89년 9월 전교조 출범에 앞장서는 등 교육 민주화 운동에 힘쓰다 해직됐다. 99년 복직하면서 합법단체가 된 전교조의 사무처장·부위원장을 맡았으나 2001년 대장암이 발병해 투병해 왔다. 전교조는 19일 오전 7시30분 영결식,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본부 앞 노제를 열어 ‘전교조 장’으로 그를 추모한다. (02)2072-2091~2, 2670-9300.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