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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3 21:15 수정 : 2008.03.24 10:32

유봉헌 교수

사비까지 털어 창단 기여한 유봉헌 교수 끝내 하늘로

지휘자 자신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청중들도 겨우내 준비한 올봄 첫 연주회가 지휘자의 마지막 무대가 될 줄은 몰랐다.

지난 20일 오후 7시30분, 천안시립교향악단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가 열린 천안시청 봉서홀. 청중 600여 명의 박수를 받으며 천안시향 유봉헌(58·나사렛대 교수) 상임지휘자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에 앞서 유 지휘자는 차분하게 연주곡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났을까, 첫곡인 리스트의 <전주곡> 설명 도중 유 지휘자가 갑자기 털썩 옆으로 쓰러졌다. 마침 공연을 보러온 순천향대 의대 교수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 응급처치를 했지만 지휘자는 일어날 줄 몰랐다. 유 지휘자는 응급실로 옮겨졌고, 공연은 중단됐다.

병원은 ‘소생 불능’ 판정을 내렸다. 뇌출혈. 이틀 뒤인 22일 오후 6시, 유 지휘자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2001년 이탈리아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가 베를린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다 쓰러져 숨지는 등 외국에선 지휘자가 무대에서 쓰러져 ‘순직’한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국내에선 거의 유례가 없었다. 예상 이상으로 신체 운동이 격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 지휘자 돌연사의 원인으로 꼽힌다.

유 지휘자는 1992년 창작 오페라 <환향녀>의 독일 순회공연을 지휘하며 국내 창작음악을 세계에 알려 주목받은 지휘자다. 부인인 소프라노 신용란씨와 두 자녀 모두 음악인으로 활동하는 음악가족이기도 하다.

그가 천안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천안 나사렛대의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다. 함흥 출신의 실향민이었던 유 지휘자는 평소 “제2의 고향인 천안을 음악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천안을 사랑했다. 인구 50만 도시에 교향악단 하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2001년 사비를 털어가며 지역 음악가들을 불러모아 천안 최초의 민간교향악단인 ‘천안심포니’를 만들었다. 2005년에는 시를 설득해 마침내 천안시향을 창단했다.

이후 2년여 동안 유교수는 천안시향이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지휘해왔고 지난 연말에는 상임 단원 선발작업까지 마쳤다. 이번 연주회는 제대로 진용을 갖춘 천안시향을 비로소 천안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였다. 천안시향 트럼펫 부수석 박상미(37)씨는 “이제 시향이 본격적으로 꿈을 펼치려는 시기에 떠나셔서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는 천안삼거리 장례식장, 발인은 25일 오전 8시 나사렛대 강당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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