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가 뇌졸중과 지병 악화로 5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5년 11월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팔순잔치에 참석한 박경리씨. 연합뉴스
|
[인생] 6·25때 남편·아들 잃고 유방암·폐암 투병
[문학] 생명사상 전파…대하소설 봉우리로 우뚝서
[토지] 25년간 5부작 집필 ‘이름없는 민초들’ 복원
박경리는 1926년 10월28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봉건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그는 책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어떤 산문에서 그는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쓴 바 있다. 그가 인간으로서 겪은 슬픔과 괴로움이 오히려 박경리 문학의 웅혼한 바탕이 된 셈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사춘기를 버틴 그는 해방되던 해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바로 결혼한다. 하지만 6·25 전쟁의 와중에 행방불명되었던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세 살짜리 아들마저 세상을 뜨면서, 그의 곁에는 딸 하나만 남게 된다. ‘젊은 과부’로서 세상에 맞서 어린 딸을 건사하던 그는 1955년 김동리의 주선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57년 그에게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안긴 단편 <불신시대>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남편을 잃고 전쟁 뒤에는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 외아들을 마저 잃는 전쟁 과부의 체험을 그렸다. 치료약의 함량을 속이는 병원, 내세를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종교인, 알량한 돈을 떼어먹는 친척 등 기만과 이기주의, 배금주의가 판치는 전후의 혼란상과 그에 대한 분노는 절에 맡겼던 아들의 위패를 불사르는 행위로 절정에 이른다. 소설 끄트머리에서 작가는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썼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토지>를 통해 활짝 개화할 ‘박경리표 생명주의’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박경리 약력
|
<토지> 완간 이후 오래 침묵하던 작가는 2003년 <현대문학>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세 차례 만에 원고지 440여장 분량으로 중단되었다. 이 미완성 소설과 산문들을 묶어 지난해 작품집 <가설을 위한 망상>을 내놓은 그는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여 만에 발표했다. 이 작품들이 결국 그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옛날의 그 집>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