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01 18:15
수정 : 2009.07.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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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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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가 30일 별세했다고 독일 부퍼탈무용단이 밝혔다. 향년 68.
무용단은 “그가 닷새 전 암 진단을 받았으나 손 쓰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나 바우슈는 이달 말 쿠르트 바일이 곡을 만들고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대본을 쓴 오페라 <7대 죄악>을 모스크바의 체호프 국제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피나 바우슈는 70년대 이후 세계 무용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안무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부퍼탈 무용단을 이끌며 새로운 형식의 연극과 현대무용, 무언극을 통합한 독창적인 무용극 ‘탄츠테아터’를 만들어 현대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피나 바우슈의 춤이 이끌어내지 않는 유일한 반응은 무관심”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공연되는 작품마다 세계 무용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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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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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안무가 월리엄 포사이드는 “피나 바우슈는 무용을 근본적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녀는 지난 50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 하나다. 그녀 자신이 무용의 한 카테고리이며, 그녀 이전에 댄스시어터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1940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피나 바우슈는 엣센 폴크방 발레학교와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무용과 음악, 연기, 마임 등을 배웠다. 그 후 무용가와 안무가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은 뒤 33살 때 독일 부퍼탈 무용극장 수석 안무가가 되면서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탄츠테아터’를 처음 선보여 세계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1974년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을 시작으로, <봄의 제전>(1975), <카페 뮐러>(1978), <카네이션>(1982), <빅토르>(1986) 등 인간의 실존에 관한 심오한 주제를 담은 그의 ‘탄츠테아터’는 현대무용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특히 그는 1986년부터 이탈리아 로마를 주제로 한 <빅토르>를 시작으로 한 도시에 장기 체류하며 그 도시를 모티브로 작품을 창작하는 ‘도시 시리즈’에 매달려왔다.
피나 바우슈는 ‘실존하는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정서로 다루었던 독일 표현주의 무용을 계승했다. 따라서 그의 움직임의 주제는 언제나 ‘인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소통’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움직이게 만드느냐?’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와 16개국 20여 명의 무용수들로 이뤄진 부퍼탈무용단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그려냈다. 사랑과 욕망, 불안과 공포, 상실과 고독, 슬픔과 고뇌, 폭력과 파괴 등과 같이 인간의 내면을 자연스런 춤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무용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아름답고, 정형화된 무용과는 전혀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그는 “나는 인생에 대해 얘기한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에서 많은 것들을 찾아냈다고 얘기해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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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슈는 특히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1979년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봄의 제전> 공연으로 한국과 충격적인 첫 만남을 가진 이래 2000년 <카네이션>, 2003년 <마주르카 포고>, 2005년 <러프 컷>, 2008년 <네페스:숨> 등 대표작들을 잇달아 소개하며 한국무용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특히 그의 ‘도시 시리즈’ 중 한국을 소재로 엘지아트센터에서 세계 초연한 <러프 컷>은 그가 2004년 10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에 대한 느낌을 무용으로 옮긴 작품이다. 한국인의 역동적이고, 끈끈한 정서와 수려한 자연경관, 한국 사회가 지닌 다양성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한국 무용가들을 독일에 소개하는 등 변방에 머물던 한국 현대무용을 세계와 이어주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는 현대무용가 안은미와 전통춤꾼 하용부, 배정혜 예술감독이 이끌던 국립무용단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것도 그였다. 안은미씨는 “작년 12월 독일에서 만날 때 조금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타계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며 “현대무용의 횃불로 타올랐던 20세기의 거장이 너무 일찍 졌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피나 바우슈는 내년에 3월에도 엘지아트센터에서 영화 <그녀에게>에서 그가 직접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던 작품 <카페 밀러>와 대표작 <봄의 제전>를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더 이상 무대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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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나 바우슈는 누구?
1940년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졸링겐에서 태어난 피나 바우슈는 14살부터 엣센 폴크방 발레학교에서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로 불리던 쿠르트 요스에게 음악, 연기, 마임, 댄스뿐 아니라 회화, 조소, 디자인, 사진 등 다양한 예술적 훈련을 받았다. 그는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특별 장학생으로 진학한 뒤 폴 사나사르도, 도나 푸어, 아메리칸 발레단의 폴 테일러와 함께 작업하고, 안토니 튜더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예술적인 자산을 쌓았다. 1962년 독일로 돌아온 피나 바우슈는 쿠르트 요스가 창단한 폴크방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1968년에 벨라 바르톡의 곡에 붙인 작품 <프라그먼트>를 발표해 안무가로 데뷔한 그는 1969년 <시간의 바람 속으로>가 쾰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안무가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그 후 폴크방 발레의 예술감독겸 안무가로서 활동하다 1973년 부퍼탈 시립극장 발레단의 예술감독 및 안무가로 취임한 뒤 무용단의 이름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바꾸면서 세계 무용계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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