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9 18:10
수정 : 2005.05.29 18:10
루게릭병 시련속 제주자연서 희망 담다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꿈꾸었다. 자연의 품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으며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다”
남제주군 성산읍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자신의 생활공간 겸 예술 활동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제주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사진을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사진작가 김영갑(49)씨가 5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영혼의 자유를 꿈꾸면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29일 중태에 빠진 김씨는 오전 9시께 119구급차에 실려 제주시내 병원으로 가는 도중 숨을 거뒀다.
지난 82년 처음 제주도를 봤을 때 첫눈에 반해 열병을 앓다가 3년만인 85년 2월 제주에 정착한 그는 제주의 자연을 담는데 모든 열정을 바쳤다.
“초원에도, 오름에도, 바다에도 영원의 생명이 존재한다”는 그는 지난해 펴낸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책에서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통해 신명과 아름다움을 얻는다“고 할 정도로 제주의 자연을 사랑했다. 밥값으로 필름을 사고 냉수로 허기를 달래며 찍은 20만여 장의 사진이 그의 열정을 말해준다.
지난 99년 루게릭병에 걸린 사실을 안 뒤 만들기 시작한 그의 갤러리는 이제 제주도의 명소가 됐다. “몸은 점점 굳어가도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는 하루하루는 절망적이지 않다”는 그의 말처럼 옛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에는 자신의 분신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몸소 가꾼 정원에서 제주도의 꾸미지 않은 매력을 옮겨 심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불치의 병에 걸려서도 자연의 치유를 믿었던 김씨를 위해 지난해 11월에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회를 열고, 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인터뷰 당시 그는 기자에게 “절망의 끝에 서니까 제주도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제주도 토박이 마음을 볼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제주사람을 찍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기 전에 지난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던 ‘내가 본 이어도’를 자신의 생애 마지막 사진전으로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빈소는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1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31일 오전 10시다. (064)784-9907.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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