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6 19:32
수정 : 2019.12.17 02:35
‘민족교육 선구자’ 성내운 선생 30주기를 추모하며
오는 12월 25일은 교육학자 성내운 선생이 63살의 나이로 별세한 지 30주기를 맞는 날입니다. 선생은 1926년 2월 29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일제하에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46년 다시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이때의 동급생이었다고 합니다.
1948년 정부수립 전후 수개월에 걸쳐 미국에서 교육전문가 십수 명이 한국을 방문해 우리 교육자들에게 현대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강의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선생은 대학생 신분으로 미국 국립사범대학 애그너스 아담스 교수의 초등학교 언어교육법과 사회과교육법 강의를 통역했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시절 서울사대 교육학과 교수 중에는 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통역을 하면서 선생은 무엇보다도 일제 식민교육의 찌꺼기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확고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정립하여 우리 교육의 터전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생의 우리 교육에 대한 생각은 문교부 수석장학관을 거쳐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유지·발전시켜온 민족·민주·민중교육의 골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선생의 교육철학과 교육학자로서의 삶은 큰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국가주의적 교육 이데올로기가 관철되는 교육현장은 민주도 자유도 평등도 없는 야만의 세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연세대의 동료 교수와 제자들의 석방운동을 벌이다가 선생 역시 강제 해직당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1977년 선생은 전남대 교수들과 연명으로 유신교육을 비판하는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선언을 발표하여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구속, 2년 형을 받았습니다. 냉전논리를 부추겨 남북분단을 고착시키고, 이를 통해 반민주적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그 아래서 민중을 수탈하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를 고착시켜온 유신교육의 문제점을 까발렸으니, 어찌 보면 선생의 수난은 당연했습니다.
선생은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직하였으나 광주민중항쟁 직후인 그해 7월 다시 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이후 전두환 폭압정권에 맞서 선생은 민중·민족시를 낭송하는 ‘음유시인’이 됐습니다. 선생님은 300여 편의 민중·민족시를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완전히 외우셨습니다. 높낮이와 쉼과 이음이 알맞게 곁들여진 선생의 시 낭송은 좌중을 압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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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25일 서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고 성내운 선생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사진 박용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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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암울했던 시절, 선생의 시 낭송은 독재정권을 향한 투쟁의 나팔이 되었고, 오랜 싸움 끝의 잔잔한 휴식이었습니다. 선생의 시 낭송은 80년대 중반 민중문화운동협의회에 의해 수천 개의 테이프로 만들어져 전국 곳곳에서 은밀히 나돌기도 했고, 나라 밖에도 알려져 미국·독일 등지 동포들의 초청을 받아 수십 번의 시 낭송회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선생은 적극적인 의미의 문화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말하는 문화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의식을 지배하는 일체의 ‘민족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선생의 교육학자적 고뇌와 양심이 민교협 결성,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민중교육> 사건, 전교조 결성 등 이 땅의 혁신적 교육운동을 낳게 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일찍이 1971년 선생은 동료 교직자들을 대상으로 우리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면서 ‘스승은 있는가?’ 자조적으로 물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새삼 선생을 추모하면서 그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스승은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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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25일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제자들이 ‘고 성내운 선생 추모의 밤’ 행사를 열어 교정에서 횃불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박용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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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일 11시 연세대 교육과학관에서 제자들이 ‘오늘, 다시 묻는다, 스승은 없는가
-성내운 선생님 30주기 추모제’를 열어 그 뜻을 기리고, 오후에는 세종시에 있는 묘소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김학민/경기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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