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4.04 17:44 수정 : 2006.04.05 18:11

서울 천도교영등포교당에서 매주 일요일 시천주주문수련을 하는 수도자들. 묵송(침묵 속에서 주문)하던 수도자들의 얼굴에 염화미소가 떠올랐다.


‘천일 기념일’ 맞은 천도교 수련 현장

“웃어라. 당신 마음이니, 당신 자유대로 쓸 수 있다. 왜 의사가 그런 이치를 모르는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소장을 하다 심장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간 김효년(46)씨는 1991년 죽기 전에 도인이나 한 번 뵙고 죽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찾아 나선 이가 월산 김승복 선생이었다.

서울 도봉산 아래 집으로 찾아가자 월산은 처음 보는 젊은이를 큰절로 맞이했다. ‘인내천’(人乃天·사람이 한울임)을 깨달아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건 여자건 지위가 높건 낮건 모든 이를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한울로 섬김)하는 천도교 수도인의 맞이법이었다. 황송해하는 그가 찾아온 연유를 들은 월산은 ‘네 마음의 주인은 네 안에 있음’을 일깨워 주면서 “웃어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선 “당신이 살 길은 없다”고 했다. 미망을 헤매던 그의 정신이 개벽되기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몇 달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그 때부터 15년이 흘렀다. 1860년 4월5일 수운이 한울을 체험한 ‘천일 기념일’을 앞둔 일요일인 지난 2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동 천도교영등포교당 3층 수련실에서 그가 시천주 주문을 외우고 있다.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육신에 얽매인 정신이 당신을 불행하게 한다
내맘의 주인은 바로 나” 정신개벽 꽃망울 핀다

수운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비법으로 수운이 전한 21자 주문이다. ‘시천주’란 ‘내 마음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의미다. 21자 주문은 ‘내 몸 안에 한울님의 영이 있고, 밖에 한울님의 기운이 있음을 깨달아 한울님의 덕에 합하기 위해 한울님과 하나가 되려는 기원문’이다.

오전 11시에 200여명이 모여 기도식을 마치고 함께 교당 안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도 50여명은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의 맛을 체험한 이들은 매주 수련 시간을 빼먹지 않는다.

‘육신은 백년 사는 한 물체요, 성령은 천지가 시판하기 전에도 본래부터 있는 것이니라. 성령의 본체는 원원충충하여 나지도 아니하며, 멸하지도 아니하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이니라. 성령은 곧 사람의 영원한 주체요, 육신은 곧 사람의 한 때 객체니라. 만약 주체로써 주장을 삼으면 영원히 복록을 받을 것이요, 객체로써 주장을 삼으면 모든 일이 재화에 가까우니라.’

천도교경전 ‘이신환성’(以身換性)편에서 ‘몸을 성령으로 바꾸라’고 한 3세 교주 손병희의 말씀을 새긴 뒤 현송(소리 내어 주문)이 더욱 낭랑해진다.

현송을 하던 중 강령(한울님이 임함)체험을 하는 수련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마치 재봉틀 바늘처럼 빠른 속도로 떨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오직 육신 관념으로만 가득 찼던 마음이 홀연히 비워지면서 온전히 한울님을 모신 성령이 드러나게 된다.

실제 동학혁명이나 3·1운동처럼 천도교가 민족의 새벽을 연 사건의 바탕엔 이 수도의 힘이 있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지도자였던 손병희는 서울 도봉산 우이동 봉황각에서 수도자들을 모아 7차례에 걸쳐 483명에게 ‘49일 수련’을 시켰고, 이들이 3·1운동의 ‘보이지 않는 눈과 귀와 손발’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천도교가 사회운동에 힘을 쏟으면서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희-춘암 박인호로 이어져 내려오던 수도 전통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영등포교당에서 이처럼 활기찬 수도열기가 싹튼 것은 월산 선생의 힘이었다. 천도교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도정과 도훈으로 구성된 연원회 의장을 지내다 지난 2004년 환원(별세)한 월산 선생은 천도교의 ‘수도의 심법’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월산 선생을 만나 2000년 천도교에 입교한 경희대 오문환 연구교수는 “여기는 정신 개벽을 이루는 곳”이라고 했다. 역시 월산 선생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고 천도교중앙총보 대교당을 맡고 있는 임운길(77) 선도사는 “육신 관념에만 사로잡혀 개인과 가정은 불안하고 불화하고, 세상은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내 안의 한울님을 깨닫고 모두를 한울님의 대하고 모시게 되는 이 주문이야말로 세상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신개벽운동”이라고 했다.

천도교 수도자들은 의암의 탄생일인 8일 오후 1시 의암이 젊은 시절 건달로 지내다가 해월을 만난 뒤 3년간 매일 짚신 두 켤레씩을 삼으며 주문을 3만 번씩 외웠던 충북 북이면 금암리 탄생가에서 동학학회를 연 뒤 주문 수련을 하고, 13일부터는 월산이 수도자들을 이끌던 강원도 가평 화악산수도원에서 49일 주문 수련에 들어간다. 다시 정신 개벽의 꽃망울이 피어나고 있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