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수녀가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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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인 모니카 수녀 “우리 아이들이요? 얼마나 다부진데요. 스카우트 야영 때 재래식 화장실에 가기 싫어 아예 밥을 안 먹는 아이들도 있데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다섯 살 짜리도 아무 문제 없지요. 또 아이들이 얼마나 의리가 있는데요. 내 동생, 네 동생 안 가리고 형 누나들이 얼마나 잘 보살피는데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품에서 비닐하우스와 판자촌 2천 가구가 부대끼는 구룡마을. 강남 속의 이방지대인 이 마을 어귀에 있는 구룡바오로의집 놀이방에서 인 모니카 수녀(47)가 아이들 자랑에 바빠 입술에 침 바를 짬이 없다. 그 사이에도 놀이방 아이들은 천방지축이다. 잠시 뒤 초등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간식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놀이방 아이들 앞에선 짐짓 점잔을 빼며 형 누나 노릇을 하던 아이들이 모니카수녀와 함께 놀이방을 나서자 태도가 표변한다. 사내 아이는 모니카 수녀와 어깨동무를 하며 제법 연인처럼 폼을 재는가하면, 다른 아이는 모니카 수녀의 핸드폰을 뺏어들고는 카메라폰을 눌러댄다. ‘타워팰리스’ 옆 판자촌 챙겨주는 이 없던 아이들 모아
놀이방에서 정성껏 보살펴 ‘예수님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아이들이 수녀님을 우습게 아네요?”했더니, 모니카 수녀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숙제 안하면 내 손에 죽는다”고 주먹을 쥐어 보인다. 그런데도 아이들 얼굴엔 별로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속까지 그런 건 아니다. 4학년자리 여자아이는 “수녀님이 할머니가 되면 제가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돌볼 것”이란다. 모니카 수녀가 2002년 이 마을에 오기 전만해도 큰 길 건너 타워팰리스쪽 아이들은 방과 후 쉴 틈이 없다고 한탄이었지만, 이 마을 아이들은 돌보는 이 없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엄마 아빠가 돈벌이를 나간 사이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는 이 없이 갈 곳 몰라 하는 아이들을 본 모니카 수녀가 3년 전부터 자신의 비닐하우스 방에서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취학 전 아이들과 놀며 점심을 해 먹였다. 오후 3~4시가 되면 모니카 수녀의 방은 학교를 파해 오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공부방이 되었다. 방이 한 칸 밖에 없었기에, 모니카 수녀는 놀이방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았다. 그러나 비나 눈이 오면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처음엔 “수녀가 할 일 없이 이곳엔 왜 와서 저러냐”며 경계하던 마을에서도 회관 한쪽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놀이방이 꾸며지고, 이제 초등학생 공부방과 중고생 공부방도 생겼다. 구룡마을엔 학교가 없으니 아이들은 큰 길 건너 학교에 다닌다.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도 길 건너 부자동네 친구들을 곧 잘 데려오기도 하던 아이들은 어느 새 자신의 처지에 눈을 떠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럴 때면 모니카 수녀는 “부끄러운 것은 가난이 아니라,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우쳐주었다. 이제 마을 아이들은 길 건너 아이들 못지 않게 밝다. 명동 성당 뒤 샤르트르성바오로수도회에 1990년 종신서원한 모니카수녀는 줄곧 소외된 이들만을 찾아다녔다. 서울 마천동 아동보육시설인 소년예수의집에서 3년간 아이들을 돌보고, 경기도 고양 벽제 애덕의집에서 1년간 중증 장애인들을 보살폈다. 또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촌이던 미아리에서 다른 수녀 2명과 함께 방 한 칸을 빌어 낮엔 일을 나가 돈을 벌고, 돌아와선 빈민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을 하면서 한 달이면 32만원을 벌다, 식당으로 옮겨선 삼겹살 불판을 닦았다. 하루 8시간을 일하고 한달에 40만원을 받았다. 온종일 설거지통 속에서 물에 부어 터진 손가락 뼈가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머리로만 이해했던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마을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세레피나 수녀(63)와 함께 비닐하우스집의 방 한칸에서 살고 있다. “단순하게 사니 좋지요. 그래야 마음도 단순해지지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니카 수녀의 비밀은 뭘까. 길 건너 부자 동네에 살면서도 더 많은 은총을 받겠다고 명강의와 마음기도를 늘 쫒아다니면서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생각은 못하는 신자들에게 그는 말한다. “예수님을 이렇게 가까이 두고 어디에서 찾느냐?”고. 산자락에서 막 고개를 내민 새싹처럼 푸른 악동들이 다시 나타났다. 이제 그는 완전히 포위됐다. 모니카 수녀가 ’악동 예수’의 짓굿은 장난질에 괴성을 지른다. 대모산이 기쁨의 함성을 되돌려줄 차례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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