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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평신도 시민운동 제안에
“내부변화 없는 선교” 비판 나와 종교계에선 많은 비리와 폭력 사태로 물든 다른 종교와 달리 도덕적인 이미지를 유지한데다, 1970~80년대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질 만큼 인권과 정의를 위한 진보적인 행보를 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인권과 빈민사목이 가톨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 놀라운 신자 증가로 이어졌다고 본다. 가톨릭은 구한말엔 서구 제국의 군대를 통해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황사영 백서 등으로 매국의 종교로, 일제 시대엔 개신교· 천도교·불교와 달리 주요 종교 중 유일하게 3·1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안중근 의사 등을 파문한 반역의 종교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1970년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노력으로 전혀 다른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톨릭은 2000년대 들어 김수환 추기경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 연이은 극우 보수적 발언과 신자들의 급격한 중산층 보수화로 진보의 과실만 독차지한 채 70년대 이전의 종교의 모습으로 회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학술회의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을 우선적 사명으로 인식하는 ‘사회교리’를 학습해온 이들이 소금기를 잃어가는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사회교리를 가르쳤던 오경환 신부(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와 김춘호 신부(수원교구 소속 은퇴)가 사회교리에 기초한 가톨릭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시민운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토론에 참석한 인권실천시민연대의 오창익 사무국장은 “주교회의와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활동이 역사상 가장 침체되어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지만 그들이 더는 가톨릭 교회를 찾지 않는다”며 “이렇게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져 가난이 세습되고, 가난의 출구로 여겨졌던 교육마저 정확히 계급화하는데,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구원의 표지를 제시하기보다 그저 영향력만을 생각해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가톨릭의 엔지오를 만들려는 것이 선교 전략의 일환일 뿐 아니냐는 것이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이은규 사무처장은 “이곳 명동성당에 들어서면서 70~80년대 느꼈던 희망이 아닌 절망을 느꼈다”며 “사회교리가 삶에 밀착된 부분이 부족해 밖에 (가톨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구실만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기우 신부는 “민중의 공동선은 표류하고 있다”며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공동선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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