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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9 19:20 수정 : 2006.10.29 19:20

광주 가톨릭계서 뜻 기려 금경축·예술제 행사 마련

사제서품 50돌 맞은 천노엘 신부

“제가 준비한 식사는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가족들한테 항상 미안했습니다.”

광주지역에서 25년간 정신지체인 생활공동체 ‘엠마우스’를 꾸려온 천노엘(74·패트릭 오닐·사진 가운데) 신부는 29일 초창기 그룹홈(장애인 사회적응을 위해 장애인과 봉사자가 어울려 사는 주택)의 어려움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81년 광주 주월동에 20평짜리 그룹홈을 열자 주변에서는 의아스런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전통적인 사목활동을 포기한 채 시간만 낭비한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장애인이 이웃과 똑같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그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룹홈에서 출발한 엠마우스(예수가 부활한 마을이란 뜻)는 정신지체인이 영아부터 노년까지 도움 받을 수 있는 가정·학교·직장·병원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울타리 안에 △발달장애아 재활 어린이집 △주간에 보호·교육·재활을 맡는 복지관 △장애인의 그룹홈과 자립홈 8곳 △중증인을 치료하는 작업활동센터 등을 운영중이다. 줄잡아 800여명의 자립과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공동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는 1932년 아일랜드 리머리크에서 태어나 성골롬반신학교에서 공부했다. 56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건너왔다. 그리고 줄곧 전통적인 사목활동을 펼쳤다.

그는 70년대 후반 자신의 사목 방법에 불만을 토로하는 젊은 보좌신부를 만났다. 열띤 토론 끝에 성당 일을 버려두고 복지시설에 눈을 돌린 젊은 후배 뜻을 받아들였다. 이후 복지시설에서 한 장애인 소녀의 죽음을 만났다. 병원 쪽은 장례를 책임지는 대신 주검을 요구했다. 이 순간 그는 죽어서도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나를 용서하시렵니까? 교회를 용서하시렵니까? 나는 오랜 시간 당신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19살 장애인의 묘비 앞에서 눈물로 참회했다. 이웃이 눈 앞에서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장애인의 존엄을 지키고 재활을 이끄는 특수사목으로 나섰다. 81년 유럽·북미의 여러 나라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복지시설을 체험했다.

준비를 마치고 단호하게 사제관을 떠나 그룹홈으로 들어간 푸른 눈의 청년은 25년 세월이 흐르면서 엠마우스를 튼실한 기반 위에 올렸지만 어느덧 은발이 그의 머리를 덮었다.

주위의 건강 걱정을 전해들은 그는 “주변 야산을 산책할 정도로 힘이 넘친다”며 “장애인 수용시설보다 생활시설을 확대하고 지원하는 일에 여력을 다하고 광주에 묻히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광주 가톨릭계는 사제서품 50돌 축하 금경축 행사를 28일 마련한 데 이어, 올 엠마우스 예술제(11월5일 저녁 7시 광주문예회관) 등의 행사를 개최한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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