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의문품고 출가
참선 고해 십여년…
떠는 촛불속에 ‘주인공’ 이 설법중 아랫도리 벗고
“이 도리를 아느냐”
안팎 따로 없음 보여줘 명정 스님의 스승 경봉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사랑하던 어머니를 잃고선 어머니를 목메게 그리다 삶과 죽음의 의문을 풀고자 15살에 출가했다. 출가 전 이미 한문에 조예가 깊었고, 출가 뒤 강원까지 마친 경봉은 스승 성해 스님의 신임을 받아 행정 업무를 맡아보게 됐다. 그러나 절 행정일을 보는 것을 마뜩치않아했던 경봉은 어느 날 경에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 어치의 이익도 없다’는 구절을 읽었다. 남의 글이나 읽는 서생살이를 걷어치우고 스스로 맛을 보고 싶었다. 23살이던 1915년 통도사를 나온 그는 가야산 해인사 선방으로 찾아들었다. 그러나 스승 몰래 도망쳐 나온 그를 반긴 것은 졸음과 망상뿐이었다. 그 때마다 허벅지에 피나 나도록 못으로 찍고 계곡에서 얼음을 가져와 입에 물었다. 그리고 기둥에 머리를 박아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집중이 안될 때는 뒷산에 올라가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스승이 “빨리 돌아오라”고 사람을 보내자 그는 다시 줄행랑을 쳐 직지사로, 금강산 마하연으로, 안성 석왕사로 도망치며 참선에 몰두했다. 그는 어느 정도 화두에 몰입할 수 있게 되자 30살이 넘어서야 통도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도 정진을 쉬지 않던 그는 36살 되던 해 겨울 갑자기 벽이 무너지듯 시야가 툭 트이면서 오묘한 일원상만이 드러나는 경지를 체험했다. 그래도 쉬지 않고 정진한 지 20여일 뒤 새벽 두시 반 문틈을 파고든 바람에 촛불이 ‘파 파 파 파’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순간 억겁의 의문이 찰나에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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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눈 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허허 이제 만나 의혹이 없으니/우담발라와 꽃 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 그는 깨달음을 노래하며 삼소굴 뒤에 올라가 달밤에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다음날 법회에 온갖 아낙들이 모인 대웅전의 법좌에 앉아 화엄경을 설했다. “일이삼사오륙칠. 대방광불화엄경.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한 입에 그 도리가 다 있다.” 그의 법문은 이미 경계를 초탈했다. “이 도리는 좆에도 있고, 씹에도 있다.” 경봉은 갑자기 옷을 벗고 남근을 쥔 채, “이 도리를 아느냐”고 물었다. 마을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함께 참가한 신자들의 충격과 고함으로 극락암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최근 니와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한스 큉 세계종교인평화회의 의장은 경봉의 생전에 그를 만나 ‘신’에 대해 문답하던 중 나름대로 식견으로 “신은 내 안에 있다”고 답했다. 그 때 경봉은 “안팎이 따로 없다”고 말해 한스 큉에게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안겨준 것으로 전해진다. 화엄경 법회에서 그가 벗은 것은 옷이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 고정관념과 분별의 외피였다. 그러나 경봉은 이 일로 정신병원에 갇힐 뻔했다. 명정 스님의 차에 취하고, 박대와 환대에 취한 채 텃마루에 나서니, 다시 삼소굴이다. 삼소굴(三笑窟)의 ‘삼’은 ‘우주의 극수’를 가리키며, ‘소’는 제 손에 염주를 두고도 온종일 찾아 헤매다 염주가 제 목에 걸려있었던 것을 뒤늦게 알고서 어처구니 없어하는 웃음이다. 주인공(깨달음 및 부처)을 찾아 수없이 줄행랑을 쳤던 경봉이 애초에 출발했던 그 자리에서 주인공을 찾았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연못의 무지개 다리 위에 서서 물 위에 누운 비루한 육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는데 영축산 솔바람이 경봉의 ’할‘(외침)인 듯 다시 주인공을 부른다. “보는 그 놈이 누구냐?” 경남 양산 영축산/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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