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하 스님
|
불화 도판집 40권 완간한 범하 스님
20년간 기자재 짊어지고 절476곳 뒤져3156점 컬러사진과 해설 실어
“이제 시작일뿐 국외 불화도 정리해야” “허허…얼떨떨합니다.” 지난 13일 낮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만난 관장 범하 스님(60·문화재위원)은 기자의 축하인사에 멋쩍게 웃었다. 이날 박물관에서는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정진해온 나라 안 사찰 불화 조사 사업이 최근 도판집 〈한국의불화〉 전40권 완간으로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는 불교미술사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는 89년부터 직지사를 시작으로 나라 안 산야에 널린 절 476곳과 14개 공사립 박물관을 뒤졌다. 그 결과 소장 불화 3156점을 고스란히 40권짜리 전집 속에 컬러 도판과 해설로 갈무리해 넣었다. 관장실에 이런 노고를 격려하는 숱한 연구자, 승려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앞서 10일 불교중앙박물관 관장 임명장도 받았다. 겹경사다. 정작 스님은 별 내색이 없다. 한 불자가 가져온 옛 금동불상을 뜯어보는 데 더 골몰해 있었다. “두번 다시 못할 일입니다. 중단할 뻔한 고비가 많았어요. 본말사 주지들의 협력 덕분에 버텼지요. 엮어낸 건 기본자료일 뿐입니다. 앞으로 대중용 소개책자를 만들어야 하고, 국외 불화들도 정리해야 합니다. 또 시작입니다.” 〈한국의 불화〉는 250여쪽에 가로 257, 세로 348㎜의 판형을 지닌 컬러 도판집 40권으로 짜였다.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간행되어온 시리즈 도판집에는 나라 안 사찰 곳곳에 소장된 불화의 절반 이상이 실렸다. 고려·조선시대, 일제시대, 한국전쟁 시기까지 줄곧 그려진 후불탱, 벽화, 괘불(걸개그림)들을 정밀 촬영한 전체 도판과 세부 도판들이 들어찼다. 돈만 들인 게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시간 두고 불화 연구자들을 훈련시키면서 일궈낸 결실이란 자부심이 있다. 불화 전집 발간은 일천한 우리 근현대 불교미술사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학문적 인프라를 갖추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가치가 있다. 가까이서 보기 어려워 애태웠던 불화들을 언제라도 생생하게 펼쳐 보면서 연구의 바탕 자료를 내주었다는 것이 가장 흐뭇하게 다가오는 의미”라고 했다. “87년 통도사 성보 박물관을 세운 이래 내부 정비에 한창이던 89년 선그림의 대가인 석정 스님이 부르셨어요. ‘평생 열심히 불화를 그려도 옛 그림을 따를 수 없다. 옛 불화를 보존하려면 우선 기록하고 정리해야한다’면서 원력을 세워 조사해보자고 했어요. 임창욱 미원그룹 회장(현 대상그룹 명예회장) 등이 낸 후원금 3억도 그때 정말 거금이었죠. 그 정도면 금방 끝낼 걸로 보고 시작한 건데, 결국 돌밭길 고행이 되었습니다.” 20kg이 훨씬 넘는 촬영 기자재 등을 짊어지고 구중산속의 사찰들을 끙끙거리며 돌았다. 상당수 사찰들은 까탈스럽게 응하지 않았다. 몇번이고 찾아가 설득했다. 불화 전체를 보수 복원해주고 작업하는 경우도 숱했다. “불화를 꺼내어 야외에 펼쳐놓고 크레인 장비 위에 올라가 찍는” 신기법을 개발하고, 결혼을 반납하고 출가해 자신의 수좌가 된 후학들의 노고가 불사의 불씨를 이어갔다. 20여년간 찍은 원판 불화 사진들은 이제 그 자체로 수장고에 진공보존하는 문화재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미술사학회 결성, 9차례의 불교미술사 학술대회 개최 등을 이끌며 연구기반을 닦는 데도 애써온 그다. 불교중앙박물관장으로서 석가탑 유물 반환에 대해 묻자 “국립박물관이나 조계종이 서로 체면 세우는 선에서 일이 풀릴 것”이라고 낙관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21일 오후 3시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한국의 불화〉 완간 기념회와 석정 스님의 선 그림(선서화)을 선보이는 기념전 ‘석정연묵’이 열린다. (02)701-6832,6830, sungbo.re.kr 양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