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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사 주지 법화 스님과 황지우 시인,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왼쪽부터).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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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뒤 낙향 준비하던 황 시인
일주암 머물며 법인 스님에 제안
월출산 월남사 법화 스님도 ‘동참’ 고려말 선승 진각혜심 기운 서린 곳
“월남사 중심으로 매년 2차례 축제” 그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답게 민초들의 아픔을 멀리한 채 산사에서 음풍농월만 하는 것을 비판하며 농사철이면 들판에 내려가 농민들이 감자를 캐거나 김장배추를 뽑는 현장에 울력을 자청해 비지땀을 흘렸다. 그리고 매달 농민들과 함께 일지암이나 들판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음악회를 열어 지역민들과 어울렸다. 얼마 전엔 울력 품삯 대신 농민이 보내준 몇통의 김장김치를 서울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살아가는 자립지지공동체의 김미령 대표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진각혜심의 선시 가운데도 민초들의 아픔과 애민을 노래한 게 4편이 전해진다”며 르네상스를 지역의 민초들과 함께 꽃피울 의지를 내보였다. 또한 진각혜심이 주석한 월남사엔 법인 스님의 제자뻘인 법화 스님이 자리 잡고 여민동락하면서 그곳을 선시 본가로 만들어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월남사가 있는 월남마을은 월출산의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인데 보물 3층 석탑이 있어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인근엔 호남의 3대 정원인 백운동별서와 다산초당, 무위사 등 선인들이 교유하던 장소와 차밭이 어우러져 있다. 포럼에 참석한 문인들도 전날 도착해 이곳을 둘러보고 빼어난 정신세계와 경치의 조화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포럼엔 선교를 넘나들며 대작을 내놓았던 학담 스님과 박규리·김명인·최승호·차창룡·고영섭·이은봉 시인, 하응백·권희철 문학평론가, 차차석 불교철학자 등이 참석해 선시 야단법석을 펼쳤다. 진각혜심과 동향으로, 고향인 화순에 혜심원이란 절을 세우기도 했던 학담 스님은 “진각선사는 세계의 실상에 대한 참된 자기 물음을 갖게 해 간화선의 사구(평범하고 속된 구)화를 벗어나게 했다”고 했다. 사찰에 10년간 머물며 시를 써 ‘공양주 시인’으로 불렸던 박규리 시인은 “선시를 이해하는 관건은 ‘시의 이해’에 있는 게 아니라 ‘깨달음의 이해’에 있다”고 밝혔다. 선시를 김명인 시인은 ‘정신계의 섬광’으로 표현했다. 진각혜심의 선시에 대해서 최승호 시인은 ‘벌거벗은 허공’으로, 차창룡 시인은 ‘복잡함의 단순화’로 설명했다. 법인 스님은 “깨달음의 시구로 이 시대 마음의 장벽을 걷어내는 선시 포럼과 축제를 월남사를 중심으로 매년 2차례가량 열겠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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