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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3 19:35 수정 : 2006.01.04 14:00

100일 간 단식을 해 세상을 돌라게 했던 지율 스님이 지난해 2월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누워 있는 모습.

지율 스님 100일 넘긴 목숨건 단식

경부고속철도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굴착으로 천성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지율 스님이 다시 단식에 나선지 100일을 훌쩍 넘겼다. 대안 노선을 검토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의 실현을 요구하며 2003년 2월 38일간 단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4월 3천배 정진과 함께 한 45일 단식, 같은 해 10월 27일부터 지난해 2월 3일까지 100일 간의 4차 단식에 이은 5번째 단식이다. 2년이 안되는 동안 절반 이상인 360여일을 굶은 셈이다. 100일이 넘는 단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반들 곁을 다니며 단식하다 지난해 12월 초 경기도 여주 신륵사로 갔던 지율 스님은 은신처가 외부에 노출되자 경북에 있는 도반의 거처로 옮겨 머물고 있다. 지율 스님은 인간 한계를 넘어선 단식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위에선 이제 단식을 중단해도 이미 회복할 수 있는 단계를 넘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 지율 왜 다시 단식에 나섰나?= 지난해 2월 지율 스님은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100일 단식을 풀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공사를 중단하고, 고속철도시설공단과 지율 스님쪽이 추천한 7명씩이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지율 스님쪽 조사단으로 참여한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이 합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고속철도시설공단이 ‘천성산 논란은 이렇습니다’란 소책자를 언론사와 연구소 등에 배포해 여론 몰이에 나서고, 천성산 공사현장 감리단장을 중심으로 사이버상에서 지율 스님에 대한 욕설이 난무했다”며 “합의 정신이 처음부터 지켜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율 스님이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조사가 끝났고, 울산지법이 시공사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지율 스님에 대해 구금영장을 발부한 가운데 고속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11월말 천성산 터널 발파 공사를 재개했다. 천성산 구간은 현재 20% 정도 공사가 진행됐다.

서 국장은 “지율 스님이 결국 ‘천성산 문제는 내가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면서 국책사업 추진자들의 부도덕성과 생명 경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죽을 결심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 지율, 왜 타협하지 않을까?=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제가 말려 들어가 있었고, 기계는 감정이 없어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 쨍쨍 쬐는 오후였고 사람들은 아무 감정이 없이 움직였습니다. 잠에서 깼는데 한 시민단체장에게 전화가 와 ‘스님은 스스로의 그물에 걸렸다’고 비아냥거렸지만 저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그들을 경멸하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그들이 저를 그들의 그물에 가두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영혼의 자유로움에 손대지 않기를. 그것이 제가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율 스님이 <초록의 공명>(삼인 펴냄)이란 책에서 밝힌 대로 끝내 자신의 길만을 가는 그를 환경운동가들은 ‘근본 생태주의자’로 부른다. 타협하지 않는 근본주의자란 의미다. 지율의 태도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를 위해 환경운동을 하며 때론 타협과 절충을 모색해온 환경운동가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환경운동가로서 ‘선배’이자 두루 신망을 받는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법륜 스님의 조언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해 단식 100일을 앞두고 위독해진 지율 스님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데려와 보살 핀 법륜 스님이나 당시 나 몰라라하던 조계종단이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이끈 도법 스님도 ‘천성산’이란 본질보다는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데 무게를 실었다.

천성산 공사 강행하자…
“이 문제 내가 끌어안고 간다”
5번째로 초인적 단식
‘생명의 소리 듣는 세상’ 꿈으로 버텨

그러나 ‘도롱뇽 지킴이’쪽은 지율 스님이 “극단적인 수단은 썼을지언정 극단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율 스님은 공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터널을 뚫는 것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된 영향평가를 해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지율이 ‘극단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것도 시공자들이 주도한 여론 호도 때문으로 본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천성산을 지키는 직책인 내원사 산감인 지율 스님은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 늪을 비롯해 20여개의 늪과 6개의 계곡을 자르고 가는 16㎞의 긴 터널의 현장에서 침묵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일까”라고 답했다.

한달 전 지율 스님을 만난 경기도 여주 신륵사 주지 세영 스님은 “한 사회 의식이 바뀌는 데도 30년은 걸리므로 살아서 함께 바꿔가자고 그를 설득했지만, 6일간 가까이 그를 겪어본 뒤엔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 만큼 생명을 자신의 몸으로 절절히 느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임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수경 스님은 “우리가 물량주의, 개발주의 환상에 젖어 생명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율 스님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생명의 소리를 듣고, 서로 사랑하고 감싸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지율의 현 상태= 지율 스님의 상태는 하루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해진다. 1일 밤에도 수경 스님과 법륜 스님이 “숨을 거둘 것 같다”는 급보를 받고 거처로 달려갔다.

세영 스님은 “암에 걸렸으나 요구르트만 먹은 채 2년을 버텼던 그의 부친만큼이나 생명력이 질긴 것 같다”며 “단식 중엔 물과 함께 간장을 탄 물과 연한 커피 등을 마셨으나 현재는 물만 마셔도 토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생명력이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과 번뇌 없는 집중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밤엔 복부 통증과 호흡 곤란으로 고통을 겪어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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