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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31 20:10 수정 : 2015.03.31 20:10

시니어 통신

내가 시골 학교에서 일하고 있을 때만 해도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이런저런 시합을 하다 보면 갓난아기를 대신 보살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도 내가 안기만 하면 울음을 그쳤다. 마을 사람들은 “저 선생 총각이라고 했지만 거짓말 같아” 하며 좋아했다. 내가 결혼하고 10년이 넘도록 애가 안 생기자 “애를 너무 좋아해서 애가 없나 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마흔아홉에 애를 갖게 되었다. 입시학원에서 일할 때다 보니 ‘이 아이가 대학 갈 때면 내가 환갑도 지났겠네’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이 이름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네가 알아서 스스로 자라나거라’라는 의미를 담아 ‘설아’(設我)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학원에 출근하기 전까지 설아와 늘 함께했다. 산과 들은 물론 전시회, 박람회, 연극, 영화도 즐겼다. 어느 날 설아가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꺼이 허락하며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말씀드렸다. “진도에 신경 쓰지 마시고 설아가 피아노를 즐기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도 좀 놀라는 것 같았다. 설아는 정말 재미있어하면서 집에 와서도 더 치고 싶다는 말에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렇게 자란 설아는 어학 특기를 살려 외고를 다니다가 1학년에 교환학생에 뽑혀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교환학생이 끝날 때쯤 설아는 “외고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알아보니 미국에선 6개월만 더 공부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공립학교임에도 만만찮은 등록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6개월을 어디서 먹고 자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미국 정부 지원으로 설아를 돌봐줬던 미국인 가정에서 앞으로 6개월을 무상으로 돌봐주겠다고 했다. 그 집 아이가 미국인 피아노 선생보다 설아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설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 즐겁게 하더니 이름처럼 알아서 하숙 6개월을 해결한 것이다.

송환웅(68)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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