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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 임건홍 이사장(가운데)이 지난달 16일 서울시 은평구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공유교실 수강생들과 함께 접시 돌리기를 하고 있다. 그는 “접시 돌리기 운동은 좌우 관절과 근육, 인대를 골고루 풀어주고 강화함으로써 전체적인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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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홍 과학기술인강사조합 이사장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나눠드린 종이접시를 오른손에 들고 앞으로 내밀어 보세요. 왼발은 뒤로 뻗고, 왼손은 허리 뒤에 두세요. 자, 이제 8자가 되도록 접시를 돌리세요. 가급적 원이 커지도록 팔은 최대한 뻗어주세요.” 안 쓰던 근육을 움직이자 수강생들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돌리던 접시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지난달 16일 서울시 은평구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공유교실이 열렸다. 공유교실이란 공익적이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보유한 시니어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강좌다. 서류심사와 시범강의를 거쳐 뽑힌 8개의 강좌가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서 무기 개발 40년잦은 출장으로 쉰살에 아토피 발병
자연건강법 수강하며 식습관 개선 퇴직 뒤 봉사뜻 “전문성 없다” 외면
교육장 동료와 협동조합 만들지만
“강사들 나이 많다” 연이은 고배
사회공헌 실적·실력 쌓아 편견 극복 이날은 서울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에서 ‘130세 시대에 맞는 건강한 여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 임건홍(65) 이사장은 “접시 돌리기는 언제 어디서든 5분이면 할 수 있는 전신운동”이라고 소개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척추를 중심으로 상체와 하체의 관절을 모두 사용하고 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무기를 연구·개발하는 과학자였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40년 가까이 탄약·화포·유도탄·헬리콥터 등을 개발하다 2012년 정년퇴직했다. 자연건강법 강사가 된 계기는 연구소 생활에서 얻은 질병 때문이었다. “무기 개발 업무는 크게 핵심기술 개발과 체계 개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핵심기술 개발과 체계 개념 설계까지 끝나면 방위산업체와 함께 체계 상세 설계를 진행하게 됩니다. 시제품을 만들면 필드테스트(현장비교시험)에 들어가는데 사계절 다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2년 정도 걸려요. 그게 끝나면 이용자인 군부대가 테스트를 하는데 또 1년이 걸립니다. 그 테스트에서 합격을 해야 양산이 결정되고, 제 업무도 국방기술품질원으로 넘어가면서 끝나게 되는 거죠.” 연구소는 대전에, 방위산업체는 대부분 경남에 있다. 출장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구소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울의 집에서 밥을 먹은 적이 드물었다. 쉰 살이 된 2004년부터 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아토피가 발병한 것이다. “증세가 소아 아토피와 똑같아요. 다리나 접히는 부위에 많이 생겼는데, 간지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습니다. 긁으면 진물도 나오고…. 회의를 하다가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 등을 의자에 비비고 있으니 보기도 좋지 않을 것 아닙니까. 아토피 고치려고 공주, 보은, 금산의 양방은 물론이고, 한의원, 용하다는 절까지 찾아다니느라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습니다. 스테로이드제를 쓰면 반짝 효과는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발병하더군요.” 그러던 중 자연건강법을 추천받아 방송통신대학에서 운영하는 자연건강관리사 6개월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했던 유기농 식재료와 식사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식습관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국을 먹을 때 밥을 말아 먹곤 했는데, 국물을 가급적 안 먹으려고 밥과 국을 따로 먹기 시작했어요. 식당에서는 반찬에다 물러지지 말라고 보존제 등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찬은 물에 씻어서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소금과 첨가물 섭취를 줄였더니 아토피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비듬이 우수수 떨어져서 검은색 양복 상의를 입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보세요. 깨끗하죠?” 효험을 경험한 자연건강법을 주위 사람에게 설파하며 자연건강 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강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12년 연구소에서 퇴직한 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집 근처 구청을 찾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전문성이 없어 당장은 어렵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40년 가까이 무기를 개발했지만, 퇴직하니 사회에선 별 쓸모가 없었다. 그때부터 인생 2막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각종 은퇴자 교육을 수강하고, 심리상담사·독서지도사 등 여러 자격증도 땄다. 1년 동안의 공부 끝에 올해 초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난해 4월에는 강사 양성 교육장에서 만난 수강생들과 함께 서울골든과학기술인강사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나머지 네 명의 조합원은 전문강사인데, 저 혼자 무지렁이입니다. 그저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이사장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퇴직자들의 노년 설계를 핵심 사업으로 정했다. 이미 은퇴교육을 잘하고 있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국공립 연구소의 퇴직 예정자를 위한 교육사업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구상에는 자신의 경험이 컸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퇴직 한달 전에 은퇴교육을 1주일 하더군요. 받아보니 은퇴교육은 미리 해야지, 퇴직이 임박해서 하는 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소에서는 건강 관련 민간보험을 직원 가족까지 다 들어줍니다. 40년 가까이 혜택을 받았으니 당연한 걸로 생각해 따로 가입할 생각도 못했지요. 그런데 강사님이 퇴직하면 보험도 끝나니 새로 가입할 것을 추천하더군요. 깜짝 놀라 보험사에 전화해보니 ‘만 60세가 넘어 가입이 안 된다’는 겁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은퇴교육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내 현실적인 벽에 부닥쳤다. 제안서를 낼 때마다 ‘실적이 없다’, ‘유명 강사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당한 것이다.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한번은 방과후교실에 과학 관련 교과 제안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담당자가 강사들 나이를 확인하고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겁니다. 학부형들이 나이가 많은 강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조합원 대부분이 60대거든요. 그렇게 또 고배를 마셨습니다.” 사회의 편견에 좌절도 했지만 도전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 재무적 수익보다 사회공헌을 통해 실적과 실력을 쌓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마포평생교육원에서 늘푸른교실 해피시니어 과정을 강의했고, 올해는 공유교실까지 맡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사회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기 전에 제가 먼저 사회에 봉사를 하는 게 순서인 것 같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더 늙어서도 조합원 활동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연령에 대한 편견도 언젠가는 넘어서겠죠.”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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