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위탁한 ‘소년범 대안가정’
어릴 적 폭력 일삼던 서정욱군
창원 청소년회복센터서 4년간
박순옥 소장 살뜰한 보살핌 받아
꿈만 같던 고교 졸업·대학 합격
“꼭 성공해 엄마 행복하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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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군(왼쪽)은 한때 일명 ‘비행청소년’이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오른쪽은 박순옥 샬롬청소년회복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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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덕분에 내가 졸업을 다 한다. 엄마, 내 잘했제?”
남들 다 하는 고등학교 졸업조차 언감생심이었다.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고 어른들에게 욕을 해대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덧셈·뺄셈도 잘하지 못하던 서정욱(19)군은 지금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비행청소년이라는 손가락질 대신 믿음으로 감싸고 돌봐준 4년, 이제는 “서로에게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된 ‘엄마’ 박순옥 샬롬청소년회복센터 소장 덕분이다.
서군의 친엄마는 3살 때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할머니가 키웠고,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는 고모한테 맡겨졌다. 어린 시절 돌봄의 손길이 부족했던 서군은 경남 김해 일대를 시끄럽게 만드는 문제아로 컸다. 결국 중학교 2학년이던 2010년 학교폭력 등으로 창원지법에서 ‘6호 소년범 보호처분’(보호시설 위탁)을 받아 여섯달 동안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했다. 처분 기간이 끝난 뒤 서군을 돌봐줄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창원지법은 2010년 비행청소년들을 돌볼 새로운 시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비행의 ‘질’이 상대적으로 덜 나빠 ‘1호 보호처분’(보호자 위탁)을 받았지만 마땅히 맡아줄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탁하는 ‘대안 가정’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서군을 맡아준 경남 창원의 샬롬청소년회복센터는 이렇게 만들어진 첫번째 ‘사법형 그룹홈’이다.
해군에서 정년퇴직한 뒤 센터를 연 유수천 센터장과 박 소장 부부는 서군을 비롯한 청소년 5명을 맡았다. 처음부터 말 잘 듣는 아이들은 없었다. 5명 중 2명이 여섯달을 채우지 못하고 센터를 뛰쳐나가 다시 비행을 저질렀다. 서군도 자신을 맡아준 박 소장에게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박 소장은 31일 “살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병원에 보내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럴수록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센터 생활은 일반 가정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갈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간다. 귀가해선 공부나 취미생활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센터에서 지내는 기간이 끝난 뒤에 ‘홀로’ 살아갈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서군은 처음엔 이런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정성으로 돌봐준 박 소장 부부에게 마음을 열고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고 한다. 태어나서 ‘엄마’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던 서군은 어느새 스스럼없이 박 소장을 ‘엄마’라고 부르게 됐다.
정해진 처분기간 1년이 지난 뒤에도 갈 곳이 없던 서군은 아예 센터가 있는 창원으로 전학을 왔다. 박 소장은 서군에게 “못 들은 척, 못 본 척, 할 말이 없는 척 살라”고 조언했다. 한동안 조용히 다니던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다. ‘수련회 갈 때 입어야 한다’고 졸라서 사준 고급 아웃도어 점퍼를 친구에게 ‘오히려’ 빼앗기고 온 것이다. 그날 밤 서군과 박 소장은 함께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2년 뒤 서군은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김해에서 살 때 자신이 괴롭힌 친구와 ‘화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서군은 공부 잘하는 일반고에 배정됐지만 “수업도, 친구가 하는 말도 못 알아먹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오전엔 공부하고 오후엔 센터에 머무는 같은 처지의 동생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돌봤다. 서군은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박 소장과 서군은 손목에 같은 모양의 금팔찌를 차고 있다. 서군이 6개월간 배달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산 커플 팔찌다. 한여름에 치킨집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때 새까맣게 탄 뒷목을 보면서 박 소장은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속만 썩이던 서군은 ‘효자’가 돼 박 소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서군은 “꼭 성공해서 두 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고맙고 또 고맙다”고 했다.
서군이 새 삶을 찾은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는 전국에 13곳이 있다. 이곳에서 박 소장 표현으로 “말도 직싸게 안 듣는” 청소년 100여명이 삶을 ‘회복’하고 있다. 법원은 전국에 두 곳뿐인 여자 소년범 보호치료시설이 폐쇄 위기(<한겨레> 3월31일치 8면)인 상황에서 사법형 그룹홈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창원/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전국 13곳에 청소년회복센터…재범률 ‘뚝’
‘가벼운’ 비행청소년 돌봄시설
가정 같은 환경에 성과 좋지만
지원금 1명당 40만원 ‘운영난’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최근 방문한 사법형 그룹홈인 부산 두드림청소년회복센터. 청소년 대여섯명이 거실에 모여 공기놀이와 오목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밤거리를 떠돌며 술과 담배에 손을 대고, 피시방을 전전하며 비행을 저질렀던 청소년들로 보이지 않았다.
사법형 그룹홈은 법원이 지정한 ‘위탁보호위원’이 소년보호재판에서 ‘1호 소년범 보호처분’(6개월~1년간 보호자 위탁)을 받은 청소년들을 모아 공동으로 생활하는 대안 가정을 말한다. 부산·대전·창원지법 관할에 13곳이 운영되고 있는데 인터넷 사기,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 등 비행의 정도가 덜하거나, 학교폭력이나 절도처럼 잘못은 크지만 법원에서 ‘한번 더’ 기회를 얻은 경우 이곳으로 온다. 상당수가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회복센터는 이런 아이들에게 집과 같은 환경을 제공한다. 센터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처음 밥다운 밥을 먹어봤다” “처음 칭찬을 들어봤다”처럼 ‘처음으로 … 해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난해 창원지법에서 소년보호재판을 맡았던 오용규 부장판사는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이 경험했던 것을 똑같이 경험하도록 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첫번째 목표”라고 했다.
사법형 그룹홈의 성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부산·경남 지역에 사법형 그룹홈을 도입한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2010년 11월부터 2년간 지역 회복센터 두 곳을 거쳐간 보호처분 청소년 90명의 3년 내 재비행률은 각각 39%, 26%다. 창원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전체 청소년의 재비행률(55%)에 견줘 낮다. 센터에서 1년간 생활한 청소년이 다시 비행을 저지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센터 설립 전인 2010년 창원보호관찰소의 소년범 재범률은 12.6%(전국 평균 10.6%)였는데, 지난해엔 8.1%(전국 평균 10.6%)로 떨어졌다.
그러나 <한겨레>가 찾은 부산·창원의 사법형 그룹홈 4곳 모두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매달 법원이 청소년 1인당 40만원씩 지원하는 교육비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양동헌 두드림센터 센터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청소년회복센터를 아동복지법의 아동복지시설로 명시해 예산 지원을 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천 부장판사는 31일 “엄벌만 한다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 비행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부산 창원/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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