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16 20:37
수정 : 2015.06.16 20:37
시니어 통신
석가탄신일 연휴를 맞아 조카 부부가 나를 만나러 왔다. 내가 워낙 늦둥이로 태어나 조카라고 해도 나이가 비슷하다. 질부는 내가 상당히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림이 워낙 빈틈이 없는데다 집안 가꾸는 것이 가히 예술적이라 나는 늘 그 집에 가면 주눅이 들 지경이다.
특별히 잘하는 음식도 없고 겨우겨우 눈가림으로 할 만큼만 하고 사는 내 살림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 집을 방문할 때 늘 먹거리를 장만해 온다. 내가 손님을 잘 대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 집에서 대접을 잘 받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럽다. 친구가 음식을 장만하려고 부엌에 들어가면 결사하고 붙들고는 있는 김치에 밥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새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차려 나오는 식탁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기본으로 준비된 찬이 있다는 말이다.
오랜 친구야 흉허물이 없지만 질부는 그렇지 않다. 몇 살 아래라고 하나 명색이 내가 시이모다. 서울 갈 때면 그 집에 늘 묵는데, 나랑 대화를 나누면서 그림자 어른거리듯 조금 움직인 것 같은데 찌개를 끓여낸 식탁이 그득그득 넘친다. 기본 밑반찬이 늘 그렇게 있단다. 그런 질부의 여행가방에서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반찬용기에 차곡차곡 담은 갖가지 밑반찬이 열 개나 나왔다. 우리 집에 있는 내내, 내가 솜씨를 부린 반찬은 필요 없다는 시위다. 좋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요즘 나는 요리전문 블로그에 자주 드나든다. 여자로 태어난 일생이니 보통 여자는 힘들이지 않고 잘한다는 요리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다. 요리를 잘하려면 우선 부엌과 친해야 한다.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워야 한다는데 나는 30분이 지나면 슬금슬금 머리부터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빨리 끝내고 싶어 중불에 끓이라는 것을 고열로 올려 푹푹 끓여낸다. 미리 양념해 두라는 것은 즉석에서 양념해 버무려 끝내버린다. 무슨 이유로 부엌 밖으로 탈출하려 서두르는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제 살길은 있다고 희한하게도 우리 식구들은 먹거리에 까다롭지 않다. 내 형편없는 음식 솜씨로도 시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며느리였다는 것이 재미있다.
최갑숙(71) 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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